The Philosopher's Haven

어느 20대 후반 남자의 이런저런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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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닌 누군가를 위한 지름신

올 가을에 대학생이 될 동생의 입학 선물로 노트북을 사 주었다. 살면서 처음으로 내 자신이 아닌 누군가를 위해 백 만원이 넘는 돈을 써 본 것 같다. 기종은 내가 현역으로 잘 굴려먹고 있는 HP Envy 13 x360이지만 나처럼 세컨드 컴퓨터가 아닌 메인 컴퓨터로 사용할 동생을 위해 사양을 한 단계 높여서 주문했다. 내 노트북은 CPU만 최상인 라이젠 7 4700U + 8GB RAM + 256GB SSD 조합에 내가 따로 1TB SSD를 달아 주었고, 동생 노트북은 공순이에게 어울리는 사양인 라이젠 7 4700U + 16GB RAM + 512GB SSD 조합이다. 솔직히 고민을 좀 했다. 내가 대학생 때 맥북에 대한 로망이 좀 있었던 기억 때문에 동생은 맥북을 사줘야 하나? 라는 생각을 했다. 심지어 ..

일상이야기 2021.06.21

과외 썰

지금도 여전히 용돈벌이는 과외로 하고 있다. 처음에는 집에만 있는 게 질려서 시작했다. 물론 냅다 나가도 되지만 나가면 항상 돈을 쓰게 되니까, 아무리 미국에 있으면서 사흘 동안 통역 알바로 벌어 놓았던 150만원 남짓한 돈이 있다 쳐도 그걸로 몇 달을 버틸 수는 없잖아? 게다가 미국에서 모았던 돈은 모두 외환통장에 넣어 놓았거나 미국의 은행 계좌에 고이 모셔 두었으니 그걸 환전하기도 아까웠다. 그렇게 시작했던 과외가 하나둘씩, 천천히 늘어나더니 알게 모르게 파트타임 직업처럼 되어 버렸다. 놀고 싶어도 과외 때문에 못 노는 수준? 누가 과외 잡는 게 꽤나 힘들다 그랬었는데 셀링 포인트를 뭐로 잡느냐에 따라 다른 것 같다. 난 국내 입시 등은 아는 게 없으니 SAT나 토플 등 해외용 영어나 대학수학 등을 ..

일상이야기 2021.06.19

자동차 근황

생애 두 번째 볼보 구매 3일차. 이제는 이 차의 핸들링이, 가속력이, 제동력이 어떤지 대략 감이 온 상태이다. 조금 더 자세히 얘기하자면 핸들 돌리는 건 적절히 묵직하고 (다른 말로 최신 자동차들에 비해 핸들 돌릴 때 힘을 더 줘야 한다) 액셀을 밟아도 속력이 늘어난다는 느낌이 딱히 들지 않으며 브레이크를 밟으면 부드럽게, 그러나 정확하게 감속한다. 미국에서 S60을 몰 때에도 핸들링은 무거웠다. 소나타보다도 작은 덩치지만 조향 시스템이 최신 차량처럼 전자식이 아닌 소위 '구세대'의 상징물인 유압식이라 대학생 때 이사를 하려고 포드 포커스 등을 몰아 본 것 외에는 운전 경험이 적었던 나에게 충격과 공포를 선사해 주었었다. 처음에 딜러샵에 가서 시운전을 하려고 핸들을 돌려 보았을 때 예상하지 못한 묵직함..

일상이야기 2021.06.12

생애 두 번째 차

결국 차를 또 샀다. 차가 한 번 있어 본 사람은 뚜벅이 삶을 견딜 수 없다는 얘기가 있는데, 대략 그랬다. 뭐 수도권이니까 그럭저럭 견딜만 하면서도, 어디 갈 때마다 최소 30분은 잡고, 1시간은 잡아야 하는 게 성가셨다. 그리고 군대 결과가 어떻게 되던 간에 어쨌든 차는 사야 하니까. 뭘 샀냐고? 볼보. 한 번 볼보빠는 영원한 볼보빠라고 첫 차로 07년식 볼보 S60을 사서 2년 동안 스웨덴뽕을 채워서 왔더니 벤츠고 나발이고 눈에 안 들어오더란다. 400만원짜리 똥차를 샀는데 왜 잔고장 하나 없냐고! 그 내구성과 안정성에 혀를 내두른 난 결국 회귀본능을 가진 비둘기마냥 볼보로 돌아왔다. 이번 차량은 04년식 볼보 XC90이다. 전의 S60과 마찬가지로 2.5T 트림. 최대출력 208마력의 2.5L 저..

일상이야기 2021.06.09

김종국 - 편지

이런저런 가수들의 노래를 듣다 보면 항상 돌아오게 되는 가수가 있다. 바로 김종국. 요즘 아이들은 런닝맨에 출연하는 예능인 정도로 여기는 일이 많다던데, 사실 김종국은 가수다. 그것도 커리어가 꽤나 화려한 가수. 그렇게 실력 있는 가수이니만큼 그의 노래를 듣다 보면 마음에 안 드는 노래는 별로 없다. 하도 많이 들어서 넘기게 되는 노래는 있을지언정. 물론 최고의 히트작은 아무래도 '한 남자'겠지만, 사실 난 그 노래보다 마음에 드는 노래가 꽤 많다. '그녀의 남자에게', '중독', '제자리걸음', 그리고 '행복하길'까지. 그리고 오늘의 추천곡, '편지'. 발라드라는 장르에서 애절한 곡은 꽤 많겠지만 가사까지 애절한 곡은 많지 않은데, 그 중에서도 '편지'는 단연 독보적이다. 그리고 누가 말했던 것처럼, ..

추천 음악 2021.06.04

사진은 왜 찍어요?

요새 워라밸이라는 말이 꽤 핫하다. 워크-라이프 밸런스의 약자로, 일과 인생의 균형을 잡는다는 뜻이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말이지만, 일에 파묻혀 사는 한국인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되는 개념이기도 하겠다. 난 어떨까? 나에게 일은 연구이다. 내가 지난 5년 간 몸담았던 나노공학 분야와 관련된 모든 것이 나의 '일'이다. 뭐 지난 3년은 95%를 일만 하면서 살았으니 어떻게 보면 내 '일'이자 '인생'이었지. 나노공학은 나에게 있어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 시작한 분야는 아니었지만, 시작하고 보니 특별해진 분야였다. 지금 돌아봐도 전공 하나는 참 잘 골랐다는 생각이 든다. 공대 부심을 갖고 있는 나에게 잘 어울리고, 최첨단 중에서도 최첨단 기술을 개척하는 분야이고, 심지어 정신줄 놓고 있다가는 심하게 다치거나 ..

짙은 - 사라져 가는 것들

난 조용한 노래가 좋다. 물론 가끔씩은 시끌벅적 신나는 노래가 좋지만, 내가 노래를 듣는다는 건 홀로 있다는 것이기에 조용히 머리를 비우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렇게 노래를 듣다가 따라 부르기도 한다. 사실 내가 좋아하는 조용한 노래를 따라 부르는 것만큼 힐링이 되는 일도 많지 않다. 가사를 모두 아는 노래가 많지 않아서 그렇지. 난 목소리가 저음 중의 저음 (고등학교 때 별명 중 하나가 극저음이었다...) 이고 진성으로 낼 수 있는 음역대가 넓지 않기 때문에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가 많지 않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두어 개 낮은 옥타브일지언정 음을 정확하게 내기는 한다는 거? 아무튼 그렇게 제한된 음역대를 가진 내가 따라 부르기 그나마 쉬운(?) 노래가 짙은의 노래이다. 조용한 어쿠스틱기타의 반주와 잔잔..

추천 음악 2021.06.01

장범준 - 잠이 오질 않네요

오늘의 추천곡은 아까 과외를 하던 중 듣게 된 노래이다. 오늘 공부를 도와드린 분은 영국에서 경제학 쪽 (정확히 뭐였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난다...) 을 공부하고 있는, 나보다 여섯 살 어린 친구이다. 처음에는 아무래도 어색어색했는데, 몇 번 얼굴을 보고 나니 좀 더 편해져서 쉬는 시간 중에도 이런저런 소소한 수다를 떨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잠시 쉬는 시간을 갖던 중 듣게 된 노래가 바로 오늘의 추천곡, 장범준의 '잠이 오질 않네요'. 당연히 처음 들어 본 노래라 제목이 뭔지는 몰랐고, 그저 버스커버스커 특유의 목소리를 듣고선 이 노래를 부른 사람이 장범준이라는 것만 안 채로 집에 와서 검색해 찾았다. 뜬금없을 수도 있겠지만, 이 곡은 앨범 커버가 특히 마음에 든다. 흔하디 흔한 아파트 공터에서 찍은..

추천 음악 2021.05.31

필름사진 번외편2 - 소련제 카메라 테스트롤

오늘은 인왕산에 잠시 다녀왔다. 딱히 어떤 이유가 있었다기보다는 간만에 일요일 과외가 취소돼서, 그리고 집에 하루종일 틀어박혀 있기는 싫어서. 아, 그리고 새로 구매한 후 문제가 생겨 수리하느라 아직도 테스트롤을 구워 보지 못한 나의 1971년식 소련제 카메라 조르키 4로 시험촬영을 해 보고 싶기도 했고. 카메라를 3대나 챙기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그 중 1대에 사용할 망원렌즈와 줌렌즈까지 챙겨야 할 경우에는 더더욱. 기존에 사용하던 EOS 550D와 FM2만 챙겨도 꽤 묵직했는데, 조르키 4도 덩치만 작지 FM2 못지않은 쇳덩어리인지라 꽤나 무겁다. 디카인 550D가 제일 가벼울 정도. 나중에 550D에 쓸 망원렌즈도 구입할까 생각 중인데 그 때는 어떻게 하지? 이 카메라의 특이사항이라면 내장..

사진 기록 2021.05.30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원래 이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약간 다른 주제로 내용을 적을 생각이었다. 사람은 자신이 갖지 못한 것들을 부러워한다고, 나는 다른 사람들이 평범하게 대학생 때 소개팅과 연애를 하는 것도 부러웠고, 친구들과 술을 진탕 퍼먹고 부끄러운 짓을 한 추억(이라고 적고 흑역사라고 읽는 것)도 부러웠다. 솔직히 말해 지금도 부럽기는 하다. 일에 집중을 하다 보니 다른 걸 잃은 느낌이 드는 것 같기도 하고. 대학원 때 조금 더 즐기면서 일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런데 사실 지금 내가 그런 것들이 부러운 건 내 상황이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다들 걱정 안 해도 된다는 그 어떤 일 하나 때문에, 그것에 정신이 팔려서 괜히 다른 사람들이 부러운 것이다. 내가 이미 갖고 있는 것부터 생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