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hilosopher's Haven

어느 20대 후반 남자의 이런저런 이야기들

일상이야기

내가 아닌 누군가를 위한 지름신

abcdman95 2021. 6. 21. 23:51

올 가을에 대학생이 될 동생의 입학 선물로 노트북을 사 주었다. 살면서 처음으로 내 자신이 아닌 누군가를 위해 백 만원이 넘는 돈을 써 본 것 같다.

 

기종은 내가 현역으로 잘 굴려먹고 있는 HP Envy 13 x360이지만 나처럼 세컨드 컴퓨터가 아닌 메인 컴퓨터로 사용할 동생을 위해 사양을 한 단계 높여서 주문했다. 내 노트북은 CPU만 최상인 라이젠 7 4700U + 8GB RAM + 256GB SSD 조합에 내가 따로 1TB SSD를 달아 주었고, 동생 노트북은 공순이에게 어울리는 사양인 라이젠 7 4700U + 16GB RAM + 512GB SSD 조합이다.

 

솔직히 고민을 좀 했다. 내가 대학생 때 맥북에 대한 로망이 좀 있었던 기억 때문에 동생은 맥북을 사줘야 하나? 라는 생각을 했다. 심지어 이젠 맥북에 M1이라는 막강한 칩이 달리기 때문에 '맥북은 성능이 안나와'라는 핑계도 안 먹힌다. 게다가 가격도 $999로 저렴(?)하다! 디자인도 예쁘고! 만듦새도 좋고!

 

근데 공대를 가면 사실 맥북은 편하지만 불편한 점이 없잖아 있다. 일단 공대에서 다루는 프로그램들 중에는 윈도우에서 잘 돌아가도록 최적화가 된 소프트웨어가 많을 뿐만 아니라 내가 데이터 분석 및 시각화에 자주 사용하는 Origin처럼 심지어 윈도우에서만 구동되는 소프트웨어도 있다. 기존 인텔 칩 기반 맥북에서는 부트캠프를 통해 어찌저찌 윈도우를 돌릴 수 있었는데, M1 기반 맥북으로는 한계가 있다. 가능하긴 하지만 최적화도 부족할 뿐더러 M1이 새로운 아키텍쳐로 생산된 칩이다 보니 잘 돌아가는 소프트웨어가 아직 많지 않달까? 그리고 맥북은 에어든 프로든 전형적인 '노트북'이다. 터치스크린도 없고, 디스플레이 젖힘각도 제한되어 있다. 뭐 노트북을 노트북처럼 쓰는 건데 뭐가 문제냐 싶겠지만, 아무래도 2-in-1의 범용성은 가지지 못한다. 즉 전자펜으로 필기를 하고 싶으면 아이패드를 따로 사야 하는데, 굳이 그렇게까지?

 

그래서 HP Envy를 골랐다. 먼저 내가 직접 쓰기 위해 심사숙고해서 고른 기종이니만큼 기기 다루는 법을 속속들이 알고 있고, 사양도 요즘 망해가는 인텔의 칩이 아닌 AMD의 라이젠 7 4700U APU가 달려 있다. 이 APU는 내가 180만원 들여 조립한 데스크탑을 켤 일이 별로 없을 만큼 작업용으로는 손색이 없으며, 동생의 노트북에는 메모리마저 16GB가 달린 만큼 앞으로 몇 년은 사양 걱정은 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저장 용량도 512GB면 대학생에게는 차고 넘친다. 내 노트북에는 1TB SSD를 따로 달긴 했지만 사실 그 용량의 1/3도 못 쓰고 있으니까.

 

게다가 x360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노트북은 태블릿으로도 쓸 수 있다! (아 물론 쓸 수 있다고 했지 쓰기 편하다고는 안 했다...) 미국에서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모든 수업이 원격으로 전환되었을 때 요긴하게 써먹었던 기능이다. 필기도 난 도무지 못해먹겠지만 뭐 잘 쓰는 사람은 잘 쓰던데, 그럼 사실상 아이패드 + 맥북 대신 사양이 엇비슷한 노트북 하나로 퉁치는 격이다.

 

그리고 좀 뜬금없지만 난 노트북을 고를 때 남들이 잘 안 쓰는 물건을 선호하는 편이다. 델 XPS 쓰는 사람은 널렸고, 맥북 쓰는 사람은 더더욱 많이 널렸다. 심지어 HP의 플래그십 라인업인 HP Spectre 역시 여기저기서 보인다. 그런데 준플래그십 기종인 Envy는 거의 안 보인다. 뭔가 특별한 느낌이랄까? 물론 잘 만든 노트북은 잘 팔리기 때문에 잘 보이는 거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Envy가 못 만든 노트북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수수하게 기본기 탄탄하고 사양 좋은 노트북이다. 더불어 HP Spectre에는 허접한 인텔 칩만 달리는데 Envy는 인텔과 AMD 칩을 고를 수가 있다! 그럼 당연히 AMD 칩을 골라야지.

 

일요일에 노트북이 도착할 예정이라던데, 내가 이 노트북을 처음 구매했을 때 만족했던 것만큼 동생도 좋아했으면 좋겠다. 살면서 동생에게 해준 게 없어서 노트북이라도 좋은 거 사주겠다고 미국에 남겨놓았던 돈에서 한 뭉텅이 떼어서 선물을 해준 건데, 비싼 노트북인 거랑은 별개로 심사숙고해서 동생에게 가장 잘 어울릴 것 같은 노트북을 골라준 만큼 대학 생활 동안 잘 쓰길 기원한다.

 

오늘의 추천곡은 이문세의 '사랑은 늘 도망가'.

 

'일상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차 후기  (0) 2021.07.18
과외 썰 추가  (0) 2021.07.09
과외 썰  (0) 2021.06.19
자동차 근황  (0) 2021.06.12
생애 두 번째 차  (0) 2021.0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