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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20대 후반 남자의 이런저런 이야기들

일상이야기

과외 썰 추가

abcdman95 2021. 7. 9. 22:17

과외를 하다 보면 학생과 서로 고마울 일이 종종 생긴다. 특히 사람으로서 마음에 들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속물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내 시간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 주니 고맙고, 학생 입장에서는 열심히 가르쳐 주니 고마운 것이다.

내가 과외를 얼마나 저렴하게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학생과 내가 동의한 시급에 맞춰 난 약속된 시간 동안 내가 아는 것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학생에게 전달하는 것, 그게 약속이다.

그리고 난 순진하게도 그 과외라는 것을 쓸데없는 책임감(?)을 갖고 한다. 돈이 아쉬워서가 아니라 내가 지금까지 배운 것들을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자는, 소위 '사회환원'이나 '재능기부'를 한다는 생각으로 과외에 임하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수업 시간 중 수업과 관련 없는 대화를 하게 될 경우 혼자서 안절부절하게 된다. 괜히 내가 받는 만큼 주지 못한다는 생각에. 같은 맥락에서 수업을 늦게 끝내 주는 일은 있어도 수업을 일찍 끝내는 일은 거의 없다. 어차피 난 돈이 목적이 아니니까, 그리고 그래서 지금 나와 함께 있는 이 학생에게 내 재능을 조금 더 주어도 아쉬울 게 없으니까.

그런데 이렇게 열심히 가르친다고 해서 내가 아낌없이 주는 나무마냥 주기만 하는 건 아니다. 아니, 사실 맞긴 맞는데 과외를 하다 보면 돈도 돈이지만 학생이 나를 잘 따르거나 그의 실력이 향상되는 것, 그리고 그런 성과에 대해 나에게 고마워하는 과정을 보는 것도 꽤 보람 있는 일이다. 서론이 쓸데없이 길었지만 사실 오늘 하고 싶었던 얘기는 그런 보람에 대한 썰들이었다.

먼저, 지금까지 나와 과외를 하고 있는 4명의 학생들 중 가장 오랫동안 수업을 한, 그래서 가장 친밀한 학생. 김포에서 사는 동갑내기 대학원생이다. 은근 4차원이신 듯싶은 이 분은 내가 열심히 영어 공부를 도와 드리는 만큼 보답하려고 하는 일이 많아서 내게 정말 긍정적인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다. 나도 상기한 그 '쓸데없는 책임감' 때문에 설정한 시급 그 이상으로 열심히 도와 드리긴 했지만, 그 덕에 그저 '넌 돈을 받고 난 지식을 받는' 관계 그 이상이 된 듯한 분이다. 대화를 하다 보면 사고방식도 올곧으신 분 같고, 사소하지만 따뜻한 선물들을 종종 건네신다. 비타민 한 통, 홍삼즙 1팩, 콜드마스크 1병, 등등. 그렇게 사람을 대하는 걸 보며 나도 이분에게서 배울 게 있다고 느낄 때가 많고, 그래서 이분에게는 내가 절대 가르친다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그저, '영어 공부를 도와 드리는 분'.

둘째, 미국에서 잠시 귀국한 남고생. 서글서글하게 생긴, 나보다 9살 어린 친구. 학부모님으로부터 이 친구가 어렸을 때 공부보다는 운동에 집중했던 아이라 공부의 기초가 필요하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역시 가르치다 보면 머리가 모자라다기보다는 공부 습관이 확고하게 형성되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학부모님으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는, 오늘 수업 끝나고 학생이 그랬단다. 날 닮고 싶다고.

어떻게 보면 내가 내 블로그에 적어 놓기는 좀 민망한(...) 얘기지만, 선생으로서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난 내 학생들이 모두 내가 민족사관고를 졸업한 것을 아는 만큼 그 이름을 욕보이지 않기 위해 열심히 가르치기도 하지만, 이 맛에(??) 선생 하는 것이기도 하다.

뒤돌아보면 난 고등학교 졸업 이후 세상과 직접 부딪치며 배운 게 많은 것 같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많았다. 물가가 어떻고, 어디는 살기 어떻고, 이런 것 말고. 그렇다고 내가 완벽하냐면, 그건 또 아니다. 오래 익은 벼는 고개를 숙인다고, 난 겸손함을 조금 더 익혀도 좋을 것 같다. 내 스스로를 내세우기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때로는 다른 사람들의 조언도 영혼을 담아 들을 필요가 있으니까.

그렇게 내 과외 학생들에게도, 그리고 내 스스로에게도 더 멋진 선생님이 될 수 있는 것 아닐까.

오늘의 추천곡은 샘 라이더의 Tiny Riot. 인스타그램 피드를 두리번거리다가 알게 된 곡인데, 뭔가 Imagine Dragons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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