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hilosopher's Haven

어느 20대 후반 남자의 이런저런 이야기들

공돌이의 주저리주저리

종교에 대한 어느 공돌이의 잡생각들

abcdman95 2021. 6. 26. 01:25

난 종교를 믿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종교를 믿지 않는 것을 넘어서서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적어도 전지전능하며 완벽한 선의 존재인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종교가 가지는 그 교리 자체는 사실 꽤 마음에 든다. 남에게 베풀며 선하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보다 멋진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내가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은 그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평화를 내 자신이 아닌 누군가에게서 찾는다는 개념이다. 10년을 혼자 살면서 지극히 독립적인 성격이 되어 버린 건지도 모르겠는데, 모든 걸 직접 해결하려고 하는 내 성격상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는 누군가에게 기도를 하며 마음의 평화를 찾는 건 나에게는 약간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종교를 믿지는 않지만 양심에 따라 행동하려 노력한다.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을 수 있도록. 전문연구요원 지원을 준비하면서도 일을 열심히 하는 것 외에 주변 사람들에게 최대한 바르게 행동하기 위해 애썼고, 지금도 종교를 믿지는 않을지언정 난 항상 스스로를 돌아보며 산다. 과거에 지은 죄가 많아서, 그 죄를 다시는 짓지 않기 위해 매일 내가 하는 말이 옳은지, 내가 가지는 마음가짐이 바른지, 그리고 내가 남들에게 보이는 행동이 적절한지를 스스로에게 묻는다. 가족에게도, 친구들에게도, 내가 지금까지 가르쳐 온 수많은 학생들에게도. 그들에게 고마운 만큼이나 그들에게 멋진 사람이 되고 싶고, 그러기 위해 조용히 노력한다.

가족에게는 내가 지금까지 받은 것들에 대한 감사함을 안고 산다. 단순히 지금까지 내게 들어간 학비가 엄청나서가 아니고, 그 와중에도 내가 내 길을 잘 찾을 수 있도록 믿어 주는 나의 부모님에게, 그리고 그렇게 길을 찾아간 나를 우상으로 생각하며 내 전철을 밟고 싶어하는 내 동생에게 간직하는 고마움이다. 그래서 예전에 쓴 글 '천천히 열리는 수도꼭지'처럼, 내가 가족에게 돌려줄 수 있는 건 돌려주기 시작했다.

친구들에게는 내가 외로울 때 가족에게 못한 얘기들을 들어 주는 것에 대한 감사함을 안고 산다. 멘탈이 부서질 때마다 징징거리면 친누나처럼 묵묵히 들어 주는 고등학교 선배,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도로여행을 함께했던 대학교 친구, 연락은 거의 안 하지만 만날 때마다 전혀 어색하지 않은 나의 대학교 마지막 룸메이트, 그리고 외로웠던 대학원 생활을 행복하게 마무리하게 해준 옆집 형, 등등. 상부상조라지만 이상하게 내가 해준 것보다는 내가 받은 것들이 더 기억난다. 가족과 떨어져 있는 동안 내 곁에서 나를 사람이 되게 해준 존재들이라서.

학생들에게는 못난 선생을 믿어 준 것에 대한 감사함을 갖고 산다. 대학교 때 처음으로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된 나와 친구가 되어 주며 내가 가르치는 것들을 잘 이해해 준 나의 1-2년 후배들부터 시작해서, 2018년 여름 한국에 오랜만에 돌아와 민사고에서 영어캠프 강사를 하면서 처음 가르치게 된 초등학교 5-6학년 꼬꼬마들이 어색했던 나도 마냥 좋다고 깔깔대던 아이들도. 그리고 대학원 때 예의를 갖춘답시고 고작 조교였던 나에게 '교수님'이라는 호칭까지 붙여 가면서 깍듯이 대해 주었던 대학교 학생들. 마지막으로 군 복무를 위해 다시 돌아온 한국에서 만난 과외 학생들도.

이렇게 혼자만의 줏대를 갖고 살게 되면 물론 가끔씩은 헷갈릴 때가 있다. 내가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지. 그리고 가끔씩은 내가 믿는 존재가 내 자신 하나뿐이라는 사실이 순간 확 와닿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지독한 외로움을 느끼곤 한다. 대학원에 처음 갔을 때 금요일에 퇴근 후 느끼던 그 헤어나올 수 없는 공허함처럼.

그 외로움 때문에 대학원 시절, 교회를 갈까 고민을 했었다. 전문연구요원을 위해 내가 들인 노력이 한 치라도 부족하면 내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을 것만 같아 일부러 친구들과의 관계도 거의 최소한으로만 유지한 채로 살았지만 그 와중에 내 자신에게 강요한 고독이 견디기 힘들어서. 결국 안 갔지만. 그 이유인즉슨 난 신을 믿지 않는데 교회를 간다는 게 뭔가 위선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래서 산속에서 도를 닦는 자연인마냥 2년 반의 대부분을 오롯이 연구실에서 일하는 데에만 투자했다.

대학원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한 번은 근처 한인 교회에서 진행하는 공개 삼겹살 파티에 참여했었다. 교회 안 다니는 사람들도 와도 된대서, 그리고 삼겹살이 너무 먹고 싶어서. 그리고 그 곳에서 신앙이 생기지는 않았지만 멋진 사람들을 만났다. 내가 기독교인 하면 떠올리는 선한 사람들, 나보다 선한 사람들. 이래서 종교를 믿는 건가 싶기도 했다. 신을 믿어서가 아니라,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하며 감정을 공유하기 위해서. 종교인들이 '주님'이라 부르는 존재는 사실 내가 생각하는 신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인 것일까?

이런 생각이 드는 이유는 내가 찬송가를 은근 좋아하기 때문이다. 가사야 신을 믿지 않으니 오글거려서(...) 못 따라 부르겠지만 그 멜로디와 화음의 웅장함이 내 마음을 건드리니까. 힘들 때 혼자 (혼자가 중요하다!) 들으면 울 것만 같은 곡들. 그것도 한두 곡만 그런 게 아니라 대부분의 찬송가가 그렇다. 평생 감정을 배제하며 살아 와서 그런지 감정 표현이 서투르고, 그 감정을 건드리는 게 찬송가다. 다른 노래를 들을 때는 느껴지지 않는 감정이 터질까봐, 좋아하면서도 듣지 못한다.

결론적으로, 앞으로도 내가 종교를 갖게 될 것 같지는 않다. 그저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삶을 살며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마음가짐을 갖고 모든 사람들을 곧이곧대로 존중하고 싶다. 그리고 그런 내 생각을 완벽히 대변해 주는 영화 대사가 있다. 2009년 영화 '천사와 악마'에서 나오는 대사이다.

I'm an academic. My mind tells me that I will never understand God. My heart tells me I'm not meant to. Faith is a gift that I have yet to receive.
나는 학자입니다. 이성적으로도 감성적으로도 난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신앙은 제가 아직 받지 못한 선물이거든요.


종교인들은 나약한 것이 아니라 내가 갖지 못한 마음가짐을 지녔다는 점에서, 그리고 내가 이해하지 못한 개념을 마음속으로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내가 종교에 대해 갖는 의견을 정확히 설명해 주는 대사이다. 밤이 늦어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못다 하긴 했는데, 아무튼.

마무리하며 어느 기독교인이 추천해 준 오늘의 추천곡을 소개한다. Christ Church Choir가 부른 'Way Maker'. 제목을 번역하자면 '인도자' 정도가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