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hilosopher's Haven

어느 20대 후반 남자의 이런저런 이야기들

공돌이의 주저리주저리

생각정리 2021.07.06

abcdman95 2021. 7. 6. 23:05

오늘은 이런저런 일이 많이 일어난 날이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자동차 정비소에 갔고, 이후 고등학교 선배와 예전부터 가려 했던 맛집을 성공적으로 공략한 다음 과외를 두 개 하고 집에 돌아왔다. 직장인도 아니면서 9시 출근 7시 퇴근을 대략 맞추게 된 건 무슨 우연인 거지?

 

정비소에서는 별 일이 없었다. 엔진 오일을 교체하러 갔지만 드레인 플러그가 렌치로 풀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손상되어 있어 포기하고 와이퍼만 교체하고 왔다. 내일 전주에 가능하면 당일치기로 갔다 올 생각인데, 엔진오일과 미션오일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상대적으로 장거리 운전을 하는 거라 좀 꺼려지지만 뭐 무슨 일 있겠어? 싶기도 하다.

 

이후 고등학교 선배와 간 맛집은 기대에 부응할 수준의, 꽤나 괜찮은 맛집이었다. 포폴로 피자라고, 처음에 가려 했을 때에는 저녁 시간이랍시고 대기 순번이 40번 넘게 나오는 바람에 포기하고 다른 곳을 갔었다. 내 기억으로는 다른 곳을 찾아서 식사까지 다 하고 집에 다 도착할 쯤이 되어서야 내 대기번호를 불렀었다. 누가 보면 엄청난 고급 맛집인 줄 알겠지만 사실 가격대는 꽤 저렴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보다는 '앤틱'한 분위기가 풍기는 곳이다. 이젠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어떤 샐러드와 비스마르크 피자, 그리고 페스토 뭐시기 하는 파스타를 주문했다. 성인 남녀 둘이서 꽤 배부르게 먹을 만한, 그러면서도 부담되지 않을 가격의 메뉴였다. 나중에 여자친구를 사귀게 되면 또 오고 싶냐고? 음. 맛은 정말 좋았지만 (즉 '맛'집으로서는 합격이지만) 테이블 간 거리도 너무 좁고 요리할 때 사용하는 타이머가 시도때도 없이 울려퍼지는 바람에 약간 정신없었다 (즉 맛'집'으로서는 불합격이다).

 

다음, 과외 첫 타임. SAT를 공부하는 고등학생이다. 학생 특유의 깨발랄함과 순수함이 마냥 귀여운, 그리고 내 동생과 1살밖에 차이나지 않아 마냥 어린 동생같은 아이. 개인적으로 아예 어린 친구들보다 이렇게 어느 정도 철이 들기 시작한 아이들을 가르치기 좋아한다. 일단 말을 잘 듣거든. (아니면 내가 그런 아이들만 가르쳐 본 건가?) 아무튼 수업 때마다 졸리거나 배고파하는 이 아이를 위해서 김포의 그 카페에서 초코쿠키를 사다 주곤 하는데, 이따 다른 공부할 때 먹기 위해 남겨 놓는다는 그 한입거리 간식에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뭔가 짠하기도 하다.

 

이 학생과는 이 학생의 어머님이 운영하시는 학원에서 수업을 하는데, 오늘은 이 학생이 다른 선생님께 혼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내가 상관할 일이 아니니 잠자코 있었지만, 속으로는 이 선생님은 학생을 어떻게 혼내는지, 나라면 어떻게 할 것 같은지 등 지극히 선생스러운(???) 고민을 했다. 그러고선 이어서 수업을 시작하는데 뭔가 시무룩해진 학생 모습을 보니 또 짠하기도 하고 이 녀석 학원 다닐 때 은근 일탈을 하는구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학생이 그러기를, 자기는 잔꾀를 자주 굴려서 숙제도 자주 안 하곤 한단다. 내 수업은 되게 열심히 준비하는 편이라고. 아직 나와 수업을 몇 번 안 해서 그런 것 같은데, 편해지면 도대체 얼마나 숙제를 안 해오려나 싶었다.

 

아, 그리고 미국으로 떠나기 전에 언니와 제주도를 사흘간 놀러 갈 거란다. 저번에 말하길 자기도 필름 카메라에 관심이 있댔는데 (주변에 필카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은근 많은 것 같다?) 선물로 컬러플러스 1롤과 후지 C200 1롤 (이거 구하기 힘든데......) 을 줄까 한다. 신나게 찍어 보라고.

 

마지막, 오늘의 하이라이트(???). 김포의, 나와 동갑인 학생. 동갑이라서 편하지만 동시에 친구로 만난 사이가 아니다 보니 뭔가 어색한 점도 있는 사람. 음대를 졸업 후 부모님의 조언에 따라 관광 쪽으로 석사 학위를 진행 중인데, 자기 마음에는 안 든단다. 그래서 영어 공부를 하다가 대화가 삼천포로 빠지게 됐는데, 지금 사실 약간 걱정이 된다. 내가 7년간 몸담은 미국은 이러이러했던 것 같다, 난 이런 조언들을 들었는데 이러이러한 것들도 선택지가 될 수 있을 듯하다, 등등 내 딴에는 그 분이 판단을 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은 얘기를 구구절절(?) 쏟아냈는데 막상 그분 입장에서 도움이 됐는지는 글쎄.

 

공돌이 감성이 물씬 묻어나는 기계적인 대화법이다. 문제 이해 - 해결책 제시. 물론 난 그 분의 입장을 완벽히 이해하는 게 아니므로 조심스럽게 특유의 '~하지 않을까요?' 하는 말투로 얘기를 하긴 했는데, 동갑내기한테 잔소리를 듣는 것 같다는 생각은 안 드셨길 빈다. ㅜㅜ 결론적으로는 한 학기를 이미 마친 입장에서 이 공부를 더 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지 판단을 하실 수 있을 테니 부모님께 난 이런 공부를 하는 게 나에게 더 맞는 것 같다, 이렇게 저렇게 길을 찾고 싶다, 라고 말씀드리면 그 의지를 믿어 주시지 않을까 하는 얘기였다.

 

이렇게 얘기하는 게 맞는 건지는 모르겠다. 한국에서 남으려면 이런 선택지도 괜찮지 않을까요, 미국으로 진출하려면 이런 선택지가 존재합니다, 등등. 그냥 그분이 하기 싫은 공부를 억지로 하면서 힘들어하는게 안타까워서, 그것도 공부 자체가 싫은 게 아니라 분야가 안 맞는 것뿐인지라 꿈과 현실을 모두 잡을 수 있는 선택지는 이런 게 있을 것 같다는 조심스러운 제안을 한 것이긴 한데 무슨 산전수전공중전 다 겪은 놈도 아니고 풋내기 동갑이 할 만한 얘기였을까 싶다. 당연한 소리지만 나라고 다 아는 게 아니니까 말이다. 그저 그 분이 알아서 잘 걸러 들으셨으리라 믿는 수밖에.

 

사족이지만 난 싫어하는 건 못 하는 성격이다. 하기 싫은 공부는 절대 내 전부를 쏟아붓지 않으며, 하기 싫은 일은 절대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 즉 무엇을 하기 전에 그것을 해야 할 이유를 찾을 필요가 있다. 그래서 그분이 생각하는 게 더 와닿았던 것 같다. 하기 싫은 공부를 2년간 하는 건 자신에게도, 그 학비를 지원해 주시는 부모님께도 손해인 일이니까. 좀 더 돌아가더라도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가는 게 맞지 않을까 생각한다. 같은 맥락에서 나도 빨리 전역증을 받을 수 있는 현역보다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전문연을 지원하는 것이고. 그리고 그분도 지금 약간 늦을지라도, 나중에는 하기 싫었던 공부를 억지로 하는 건 후회하겠지만 하고 싶었던 공부를 더 하는 건 후회하지 않을 테니까.

 

또 사족이지만 이분한테서 오늘 기분 좋은 말을 들었다. 내가 자신의 인생 영어 선생님이라고. 누군가의 공부를 돕는 입장에서 이보다 좋은 칭찬은 별로 없을 것 같다. 그리고 나중에, 내가 미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인연이 이어지면 그것도 꽤 재미있을 것 같다. 그 때까지 영어 공부는 내가 책임지고 도와 드린다고 했고, 혹시 그분이 박사 학위를 미국에서 진행하게 된다면 그것도 내가 제한적으로나마 도와드릴 수 있을 것 같다.

 

혹시 알아, 미국에 갈 때가 되어서도 친구처럼 지낼 수 있을지. 김포의 어느 한 카페에서 머리 싸매고 공부했던 시절을 곱씹으면서.

 

오늘의 추천곡은 Cheat Codes의 'Hate You + Love You'. 귀찮아서(...), 그리고 내일 전주에 가기 위해 일찍 일어나야 해서 가사 번역은 나중에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