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hilosopher's Haven

어느 20대 후반 남자의 이런저런 이야기들

공돌이의 주저리주저리

근황토크 2

abcdman95 2021. 12. 29. 09:51

두 달만에 돌아왔다.

 

사실 그 동안 글을 쓸 만한 주제는 꽤 있었지만, 귀찮아서 미루고 미루다가 오늘 드디어(!!!) 그 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해 적게 되었다.


전문연 생활은 생각보다 빨리 속도가 붙는 중이다. 아니면 그냥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것이거나. 뭘 한 것 같지도 않은데 벌써 입사 한 달째가 되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오직 36개월 뿐이기에 그 짧다면 짧은 (길다면 긴?) 시간을 최대한 의미 있게 보내려 하는데, 첫 달은 그럭저럭 잘 흘러간 것 같다.

 

일단 연구 프로젝트가 많이 생겼다. 내가 지도하는 프로젝트 몇 개, 내가 도움만 주는 프로젝트 몇 개, 그리고 내가 소위 '숟가락만 얹은' 프로젝트 한두 개. 프로젝트가 한 방에 몇 개가 쌓여 버려 약간은 멘붕(?)하기는 했지만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임하는 중이다. 정확히 말하면 기대 80% 걱정 20%랄까? 내 소위 '상사'이신 박사님이 날 과대평가하고 계신 건 아닌지 싶기도 하고, 동시에 일이 빡세면 내가 그만큼 불태우면 된다는 패기 넘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저번 글에도 적었지만 아직도 전문연 합격이라는 게 완벽히 실감이 되지는 않는다. 진짜 나 여기 합격했구나... 싶을 때도 있지만 가끔씩은 전북대에서 인턴을 할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내 일상에 머리를 갸우뚱하기도 한다. 일이 더 빡세져야 정신을 차리려나?

 

사족이지만 아이패드 구매는 신의 한 수였다. 정리가 정말 잘 된다. 난 태블릿을 안 쓰는 게 아니라 싸구려 갤탭을 안 쓰는 거였어! 물론 신품 구매가 20만원짜리 갤탭A와 신품 구매가 60만원 이상의 아이패드 에어를 비교하는 건 불공평하지만, 어쨌든 아이패드와 애플 펜슬을 한 달간 사용해 본 결과 이건 정말 잘 산 물건이 되었다. 솔직히 나도 이렇게 잘 쓸 줄은 몰랐다. 40만원짜리 장난감마냥 집에 처박아 두면 어쩌지... 싶었는데 다행이다. 난 3세대 아이패드 에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동생이 나중에 한국에 왔을 때 이걸 마음에 들어 하면 (지갑 사정을 둘러본 후에...) 동생도 하나 사 줄까 생각하고 있다. 물론 동생은 4세대로!


1월 21일, 첫 월급을 받았다. 계약서상으로는 세전 월 390이었으니 세후 월 340 정도에서 입사 날짜를 고려해 일주일치를 뺀 돈이 들어올 줄 알았는데, 입금된 금액이 390이 넘어 약간 놀랐다. 나중에 뭐 첫 달은 원래 좀 더 많이 주는 편이라고 하길래 매달 이 돈이 들어오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약간 실망했지만 (뭐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주절주절) 그래도 군생활하는데 연봉 5천이면 감지덕지 아냐? 게다가 부업인 과외로 월 100-120 정도가 추가로 들어오니 딱히 아쉬울 것도 없다. 아니 아쉬우면 안 되지, 나 뭐래니.

 

그리고 첫 월급 (물론 일 자체는 대학생 때 조교를 하면서 시작했지만 그땐 월급 해봐야 40만원 남짓이었으니까...) 플렉스를 했다. 엄빠 용돈 60, 동생 용돈 20. 조금 더 플렉스하고 싶었는데 아직 내 지갑 사정도 엄청 넉넉한 건 아니어서........ 대신 가족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좋은 식당에서 멋지게 플렉스 한 번 더 해야겠다. 계좌이체는 편하긴 해도 뭔가 뽀대가 나지는 않잖아? 아무튼 이 돈으로 엄마는 좀 멋진 옷을 사라고 했다.

 

오늘 (2월 21일) 은 두 번째 월급이 들어왔는데, 월급이 정상적인 수준으로 들어왔다. 예상했던 대로, 세후 340. 적은 돈은 아니지만 역시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과외를 더 잡아야 하나?


자동차 얘기를 좀 하자면, BCM을 새로 주문했다. 한두 달 전부터 자동차의 디스플레이에 BRAKE FAILURE STOP SAFELY라는 경고문과 브레이크/ABS 경고등이 뜨더니 ABS, 트립컴퓨터, 그리고 크루즈컨트롤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았다. 볼보의 공식 서비스센터에서 진단을 받은 결과 재수없게도 브레이크 제어 모듈(BCM)이 사망하였으며, 수리 비용은 200만원 후반대가 들 예정이었다. 뭐... 운이 없기는 하지만 어떻게 보면 비싼 차를 사도 문제가 생길 여지는 언제든지 존재했으니까 어쩔 수 없다.

 

그 외에는 엔진마운트와 컨트롤암, 볼조인트 그리고 스웨이 바 엔드 링크를 이베이에서 추가로 주문했고, 며칠 전에 모두 도착했다. BCM 교체는 소프트웨어 작업이 병행되는 수리여서 맡길 수밖에 없지만 이런 단순 부품 교체는 내가 직접 할 수 있기 때문에 (아마도?) 조만간 셀프정비소에 가서 열심히 소란을 피워 볼 생각이다.

 

이게 끝나고 나면 한동안은 기본적인 유지보수 외에 큼지막한 수리는 필요없을 듯하다. 대신 최근에 소개팅(!!!)을 하게 돼서 자동차도 꽃단장(?)을 해 주었는데, 두어 달 전에 당근마켓에서 구매했던 광택기의 덕을 좀 보았다. 전조등만 약 10분 정도 대충 작업했는데 효과가 꽤 좋았고, 시간이 나는 대로 자동차 전체를 손봐 줄 생각이다. 단점 아닌 단점이라면 자동차의 페인트가 메탈릭 실버 (소위 '은색'이지만 플랫한 회색 느낌이라기보단 펄 느낌이 좀 난다) 라서 흠집이 잘 안 보이는 대신 광택을 내도 효과가 크게 보이지는 않는다는 점?


자동차 얘기를 했으니 썰을 좀 풀자면, 내 돈으로 직접 산 인생 첫 차는 400만원짜리 2007년식 볼보 S60이었다. 외관은 그닥 뛰어나지 못했지만 내구성만큼은 그 가격대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무 문제 없이 내 석사 생활 2년을 버텨 준, 그리고 내게 볼보라는 브랜드의 이미지를 각인시켜 준 자동차였다.

 

그 인식이 이어져서 난 지금도 볼보를 탄다. 그것도 내 첫 차보다 더 오래된, 2003년식 볼보 XC90. 중형 세단에서 준대형 SUV로 넘어가는 게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난 대만족하는 중이다. 사실 한국에 와서는 아반떼 같은 차를 사려 했는데, 사람 일은 모르는 거라고 정신차려 보니 난 볼보를 타고 있었다. 그닥 좋지 않은 9km/L 수준의 연비, 2.5톤에 가까운 무게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한 엔진, 그리고 그 덩치에 걸맞게 굼뜬 움직임 등 단점이 없지는 않다. 게다가 차의 외관만 신경쓰고 관리에는 소홀한 한국의 자동차 문화로 인한 자잘한 문제들까지.

 

하지만 장점 역시 존재한다. 낮은 연비의 주원인인 무게와 그에 따른 맷집(?)으로 인해 구형 차량치고는 엄청난 안전도를 지니며, 아직 해 보지는 못했지만 드넓은 실내 공간 덕에 차박을 하기 정말 편하다. 또한 팰리세이드보다도 높은 차고로 인한 넓은 시야, 차체 자체의 서스펜션 세팅으로 인한 푹신한 승차감, 그리고 결정적으로 도로에서 동일 차종이 거의 돌아다니지 않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나만의 차'라는 만족감까지.

 

그 외에도 뭐, 소위 '가오'라는 게 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구형 볼보 SUV를 가오 때문에 살 리는 없고, 그저 내 취향따라 사서 몰고 다니다 보면 주변 반응이 재밌달까. 그저 '볼보'니까 안전하겠지, '볼보'니까 승차감이 좋네, '볼보'니까 이쁘네 등등. 그리고 뭐 한국 도로에서 운전하다 보면 차선 변경 시 양보를 안 해주고 경적을 울린다는, 그런 얘기를 들었는데 난 지금까지 그런 일은 겪은 적이 거의 없다. 그게 사람들의 인식이 선진적으로 바뀐 건지, 아니면 내 차가 외제차여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애초에 난 얌체들 아니면 대체로 차종이고 뭐고 양보를 해주는 성격이어서 잘 모르는 걸지도?

 

한국에서는 외제차, 특히 구형 외제차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다. 내가 구형 볼보를 탄다고 얘기를 하면 첫 반응은 '부럽다'이고, 대체로 그 다음은 '유지비 많이 안 드냐'는 질문이 나온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1) 자신이 구입하려는 차종에 대해 사전에 충분히 공부를 할 의향이 있으며 2) 그 차량의 유지보수를 전적으로 정비소에 맡길 계획이 아니라면 (즉 문제가 생겼을 경우 자신이 어느 정도는 직접 진단을 할 수 있거나 그 정도까지 공부를 할 생각이 있다면) 그렇게 부담스러울 것은 없다. 뭐 당연히 내 차가 10년 된 아반떼보다야 유지비가 더 나가지만, 그 정도는 감수할 생각이 있다고 보고.

 

나도 미국에서 S60을 구매했을 때는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구매를 했다. 그냥 저렴한, 그리고 굴러가는 자동차를 원한 것이었다.

 

그런데 한국에서 XC90을 고를 때에는 훨씬 계획적으로 조사를 진행했다. 내가 주의해야 할 고질병이 있는지, 그리고 그 고질병이 심각한 것인지 등등. 가령 1세대 XC90 중 페이스리프트 전 (즉 2003-2006년식 차량들) 모델은 직렬 5기통 엔진이 달린 2.5T (트림명에서 알 수 있듯이 배기량 2.5리터에 터보차저가 달려 있다) 트림과 직렬 6기통 엔진이 달린 T6 (2.9리터의 배기량에 트윈터보가 달렸다) 트림이 있는데, 이 중에서 T6 트림은 가급적이면 피하라는 얘기가 있다. 2.5T 트림의 경우 208마력의 출력을 지닌 엔진 자체의 내구성과 신뢰성도 뛰어나거니와 그 엔진이 5단 자동미션에 맞물려 있는데, 이 미션 역시 내구성과 신뢰성이 꽤 뛰어났다. 그에 반해 T6 트림의 경우 엔진 그 자체에는 크게 문제가 없었지만, 출력이 268마력으로 늘어난 데 비해 그에 맞물린 4단 자동미션의 내구성이 그 출력을 버티지 못하는 데에 문제가 있었다. 해서 재수가 없으면 그 높아진 출력을 쓰지도 못하고 미션이 퍼져 콩팥 하나를 팔아야 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었고, 이를 사전에 알아 둔 나는 일부러 하위 트림인 2.5T를 골랐다. 그 외에는 동세대 볼보의 차량들이 전자장치가 약간 메롱할(?) 수도 있다는 얘기가 있는데, 다행히도 이 문제는 아직 겪어 보지 못했다.

 

나는 자동차를 좋아한다. 내 주변 사람들은 다 알 정도로. 그리고 이런 독특한 취향을 살려 나는 외제차를 몰면서도 유지비는 그런저런 수준으로만 부담할 수 있게 되었는데, 웬만한 정비는 정비소에 전적으로 맡기지 않는다. 아니, 정비소에 전적으로 정비를 맡기는 일은 없다. 애초에 내 자동차를 가장 많이 운전하는 사람은 나이므로 나보다 이 차의 문제점들을 잘 아는 사람은 없다고 본다. 그 논리로 작년 말에 히터코어를 직접 교체하면서 공식 정비소에서 부른 100만원과는 비교도 안 되는 16만원 남짓한 비용으로 수리를 성공적으로 끝내기도 했고.

 

위에 언급했지만 조만간 엔진마운트, 볼조인트, 그리고 컨트롤암을 교체할 예정이다. 이 역시 정비소에 가면 300만원은 우습게 넘긴다. 애초에 엔진마운트 교체 견적이 200을 넘겼으니 뭐. 그런데 이를 셀프정비소에서 직접 진행할 경우 부품값 약 45만원, 그리고 정비소 사용료 약 5만원 정도 해서 50만원만 지출하면 된다. 물론 내가 직접 부품을 교체해야 하지만, 그 정도는 할 수 있잖아?

 

이렇게 직접 문제를 진단하고 직접 해결책을 찾으면서 정비소에는 꼭 필요할 때에만 전문가의 의견을 '참고'하러 방문할 경우, 외제차를 유지하는 것도 크게 부담이 되지 않게 된다. 그에 따르는 지식과 경험, 그리고 만족감은 덤.

 

내심 기대된다. 엔진마운트와 볼조인트, 그리고 컨트롤암을 교체한 후 차의 승차감이 얼마나 더 좋아질지. 그리고 내가 성공적으로 이 중정비를 마칠 수 있을지, 약간 걱정 반 기대 반이다.


오늘의 추천곡은 넬의 'Afterglow'. 넬의 2008년 앨범 'Separation Anxiety'에 수록된 의외의 명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