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hilosopher's Haven

어느 30대 초반 남자의 이런저런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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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가 된다면 고등학교 후배들에게 해 주고 싶은 이야기

제목부터 '꼰대' 느낌이 확 나는데, 사실 그런 의도는 없다. 꼰대는 뭐 꼰대질하려는 의도가 있겠냐마는. 이 글이 현재 민사고를 다니는 나의 후배들, 그 중에서도 민사고라는 작은 사회에서 소외된 친구들을 위한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열심히 꿈을 향해 노력하는 후배들에게는 미약하게나마 삶의 나침반이 될 만한 말이 되었으면 한다. 고등학교 3년이라 하면 한국에서는 가장 중요한 시기일 것이다. 대학교를 준비하는 기간이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기에. 그 때문에 중학교에서 갓 졸업해 철도 제대로 들지 않고 자신이 진정 원하는 삶은 무엇인지, 아니 삶 그 자체는 무엇인지에 대해 인식이 생겨나기 시작하는 나이에 한국의 청소년들은 '좋은 대학을 가야 해'라는 어른들의 말에 등떠밀려 공부에 묻혀 3년을 지낸다. ..

오피니언 2019.09.25

실험 실패의 연속

원래 연구는 그런 거다. 실험이 실패하면 그 원인을 찾아 해결하는 것. 실패가 없는 실험은 없다. 심지어 레시피를 정확히 숙지해도 망할 수 있는 게 실험이다. 삶이 으레 그렇지만 말이다. 이번 주가 연구 생활 최악의 일주일이 아닌가 한다. 실험이 연속으로 망하고 있다. 하루에 잡을 수 있는 실험은 딱 하나뿐인데, 그 실험이 계속 실패한다. 원인조차도 잘 모르겠다. 총체적 난국이다. 실험이라기도 뭣하다 사실. 실험이라기보다는 본격적인 실험 전 공정에 가깝다. MoS2 결정이 붙어 있는 테이프에 금박을 씌우는 것. 약 40 nm 두께의 순금 박막이 입혀져야 한다. 엄밀히 말하면 굉장히 간단한 단계이다. 그런데 원인 모를 오염 물질이 계속 유입된다. 처음 EDS (Energy-Dispersive X-ray S..

일상이야기 2019.09.25

우울한 날이다.

오늘은 내 멘탈이 얼마나 약해졌는지 약간 감이 오는 날이었다. 연구 계획대로라면 아침에 라만 분광기로 탄소 입자의 라만 스펙트럼을 분석한 후 오후에는 단층 MoS2을 만들기 위한 첫 작업인 전자빔 증착장비 (e-beam evaporator, 전자총을 사용해 원하는 면적에 몇 나노미터-마이크로미터 두께의 금속 막을 입힐 수 있는 장치) 를 사용해 다층 MoS2가 준비된 실리콘 웨이퍼에 40nm 두께의 금을 입히는 작업을 할 예정이었다. 머피의 법칙이라던가, 일이 꼬이려면 모든 일이 깔끔하게 꼬여 버리는 것을. 오늘이 딱 그런 날이었다. 1400 cm-1과 1600 cm-1 부근에서 선명한 신호가 보여야 했을 탄소 입자 샘플에서는 무슨 이유였는지 1400 cm-1 신호만 보였으며, 전자빔 증착장비로 금박을 ..

일상이야기 2019.09.10

작자 미상 - 값진 하루란?

오랜만에 '명언읽기' 카테고리에 글을 쓴다. 과거 중학생 때 중2병(?)에 걸린 나는 뭔가 멋진 명언들을 수첩에 적어 놓곤 했다. 이번 명언은 당시 내가 좋아했던 명언이다. 구글에 검색을 해 보니 소포클레스가 한 말이라는 얘기가 있던데, 정확한 출처를 확인할 수가 없어 이 글에서는 '작자 미상'으로 적어 놓으려 한다. "오늘 내가 헛되이 보낸 하루는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바라던 내일이다." 나랑 어제 죽은 사람이랑 무슨 상관이야? 할 수도 있는데, 생각해 보면 내가 언제 갑자기 어제 죽은 사람의 입장이 될지 모르는 것이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떠오르는 명언 하나가 더 있다. "Yesterday is history, tomorrow is a mystery, and today is a gift. That'..

명언읽기 2019.09.09

공돌이의 작업 환경 기록하기

요즘 유튜브에서 전자기기 관련 영상을 찾아 보는 것에 재미가 들려 버렸다. 구매를 고민했던 갤럭시 S10부터 시작해서 독특한 전면 카메라를 가진 OnePlus Pro 7, 그리고 나름 있으면 유용할 것 같은 아이패드 프로 등등. 물론 내 쇼핑 철학이 '굳이?'라는 질문을 기반으로 한 이상 정말로 그런 전자기기들을 구매할 일은 없겠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전자기기들은 뭐가 있지? 2016년 초에 처음으로 내가 직접 번 돈으로 아수스의 트랜스포머 북 T100 Chi 모델을 구매한 후 주요 물품들은 내가 조교로 일하면서 번 용돈으로 구매하는 습관이 생겼는데, 지금까지 내가 구매한 전자기기들 중 내가 현재 사용하는 물건들을 나열해 보려 한다. 물론 이 외에도 한두 개 정도 더 있지만 지금 내 주변에..

연구 효율 높이기

지금은 여느 때처럼(?) AFM (원자 현미경) 을 돌리고 있다. 보통 데이터를 수집할 때 사용하는 tapping mode (AFM 팁으로 톡톡 두드리며 샘플 표면을 측정하는 방식. 샘플 표면을 긁지 않아 팁의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 이 아닌, contact mode (AFM 팁을 샘플 표면에 접촉시킨 채 일정한 압력을 가하며 스캔하는 방식. 팁이 언젠가는 닳게 되며, 그 전에 아예 부러질 수도 있어 잘 사용되지 않는다) 를 사용 중이다. 이유인즉슨 현재 스캔하는 샘플인 단층 MoS2의 표면에 쌓인 정체불명의 이물질을 제거하기 위해서이다. '스퀴지' 기법이라고 내가 학부 때 다녔던 일리노이 주립대학교에서 Matthew Rosenberger라는 박사 과정 학생 (현재는 미 해군연구소에서 근무 중이다) 이..

일상이야기 2019.09.07

에픽하이 - Lullaby for a Cat

난 개인적으로 한국 힙합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미국 힙합을 같이 들어 보면 그렇다. 1996년 9월 13일 사망한 전설적인 미국 힙합 래퍼 Tupac의 명곡 'Dear Mama'를 들어 봐도 그렇다. 되도 않는 영단어를 집어 넣어 가면서 운동도 안 해 젓가락마냥 얇은 팔로 '이것이 스웩이다!'를 외치며 상대방을 까내리는 가사가 아니라 자신의 어머니에게 바치는 아름다운 가사의 곡이다. A poor single mother on welfare, tell me how ya did it / 보조금으로 사는 가난한 미혼모였던 어머니, 그걸 어떻게 견디셨나요 There's no way I can pay you back / 어떻게 그 은혜를 갚을 수 있을까요 아니면 한국에서 훨씬 잘 알려진 래퍼인 에미넴의 ..

추천 음악 2019.09.02

태풍 도리안의 그림자에서.

난 가끔씩 재난 영화를 볼 때마다 '내가 저 상황이라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엉뚱한 암 치료제 때문에 낮에는 조용하지만 밤만 되면 생지옥이 되는 세상이 배경인 2007년작 '아이 엠 레전드', 지구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좀비화된 배경의 2009년작 '좀비랜드'. 그리고 독특하게도 동충하초 비슷한 기생 균류가 사람을 좀비화시킨 세상을 배경으로 하는 2013년 PS3 기반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핵전쟁으로 세상이 황폐화되어 버린 '폴아웃' 시리즈 등 게임도 여러 가지가 있다. 갑자기 왜 재난 얘기를 하냐고? 상기한 배경과는 비교도 안되는 상황이긴 하지만 내가 사는 미국 플로리다 주에 대형 허리케인이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사피어-심슨 등급 기준 4등급에 분류되는 재앙급 허리케인이었지만 지금은..

일상이야기 2019.09.02

추억팔이 아닌 추억팔이

15년 전, 초등학교에서 사귀었던 친구들 중 한 명인 L과 SNS를 통해 연락을 하던 도중 이런 얘기가 나왔다. 나 미국에서 산지 너무 오래돼서 한국어 어눌해도 놀리면 안된다 ㅋㅋㅋ 그래, 그래도 내년에 만나면 재밌겠다, 추억팔이할 것도 많고. 추억팔이라... 그런 게 있나? 난 사실 초등학교 시절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당시 날 괴롭혔지만 4년 후 나의 민사고 합격 소식을 듣고 자기 이름을 꼭 기억해 달라던, 좀 노는 친구였던 K, 내 주변 친구들 중 하나였지만 그닥 친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던 몇 명의 남학생들, 그 중에서도 꽤나 착했지만 너무나도 눈치가 없어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D, 당시 다녔던 영어학원인 청담어학원 정도. L에게는 미안하지만 L과 공유할 만한 추억은 사실상 없는 것 같..

어느 중국인 방문 학생의 비극

University of Illinois at Urbana-Champaign, 한국명 어바나-샴페인 소재 일리노이 주립대학교는 캠퍼스 규모가 정말 크며, Urbana 시와 Champaign 시라는 소도시 두 곳의 경제를 상당부분 책임진다고 할 만큼 학생들이 많다. 내 기억으로는 학부생만 5만 명 가까이 되는데, 이래서인지 방학 때 캠퍼스 근교에 위치한 수많은 식당들을 보면 안쓰러우리만치 텅텅 비어 있고는 했다. 그리고 총인구 15만 명 남짓하는, 소도시라기도 민망하리만큼 작은 이 마을을 둘러보면 이 곳은 정말 심심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학교 경찰 (미국에서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대학들은 학교 소속의 경찰 조직을 따로 운영한다) 이 이따금씩 캠퍼스에서 일어난 크고작은 범죄들에 대한 정보를 학생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