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hilosopher's Haven

어느 20대 후반 남자의 이런저런 이야기들

오피니언

기회가 된다면 고등학교 후배들에게 해 주고 싶은 이야기

abcdman95 2019. 9. 25. 04:27

제목부터 '꼰대' 느낌이 확 나는데, 사실 그런 의도는 없다. 꼰대는 뭐 꼰대질하려는 의도가 있겠냐마는. 이 글이 현재 민사고를 다니는 나의 후배들, 그 중에서도 민사고라는 작은 사회에서 소외된 친구들을 위한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열심히 꿈을 향해 노력하는 후배들에게는 미약하게나마 삶의 나침반이 될 만한 말이 되었으면 한다.

 

고등학교 3년이라 하면 한국에서는 가장 중요한 시기일 것이다. 대학교를 준비하는 기간이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기에. 그 때문에 중학교에서 갓 졸업해 철도 제대로 들지 않고 자신이 진정 원하는 삶은 무엇인지, 아니 삶 그 자체는 무엇인지에 대해 인식이 생겨나기 시작하는 나이에 한국의 청소년들은 '좋은 대학을 가야 해'라는 어른들의 말에 등떠밀려 공부에 묻혀 3년을 지낸다.

 

대한민국 최고의 고등학교 중 하나라 불리는 민족사관고등학교에서도 딱히 다를 건 없다. 강원도 산골짜기에 위치한 조용한 고등학교 캠퍼스에서, 그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민사고 학생들은 노을을 제대로 볼 기회도 없이 3년을 정신없이, 개미처럼 생활한다. 넓지도 않은 12층짜리 건물에서. 오전 6시 30분에 억지로 일어나 아침기라는 거창한 이름 아래 차가운 운동장 바닥에서 맨발로 검도 연습을 하며, 아침 식사를 한 후에는 정확히 오전 8시 2분까지 기숙사를 나와야 한다. 점심 시간까지 수업이 있으며, 그 후에는 점심 시간에 밥을 먹든 부족한 수면을 보충하든 못다 한 과제를 마무리하든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칼같이 튀어나간다. 그리고 오후 5시경 수업이 끝나면 배가 고프다며 가파른 산길을 단숨에 뛰올라간다. 그리고 수백명의 학생들이 엘리베이터를 타려는 그 혼란을 기다리지 못하고 12층 건물을 또 계단을 통해 달려 올라간다. 후다닥 밥을 먹어도 이미 해는 거의 져 있으며, 오후 7시면 특별 허가가 있지 않는 한 기숙사 건물을 나갈 수 없다. 다음 오후 9시까지는 자습시간이며, 소위 '클로킹'을 장착하신 사감 선생님께서는 쥐도새도 모르게 이 방 저 방을 감시하고 다니신다. 그리고 오후 10시까지 다시 혼정 시간. 부모님 대신 사감 선생님께 밤 인사를 드리는 시간이자 교내 각종 행사와 동아리 공지를 알리는 시간이다. 민사고 3년을 보내면서 살이 찌는 원인이 된다는 혼정빵을 먹고 나면 다시 오후 10시부터 오후 11시 50분까지 2차 자습시간. 그리고 새벽 2시까지 전원은 들어오나 호실에서 나오면 안 되는 통금 시간이며, 새벽 2시부터는 기숙사 내 모든 학생 호실의 전원이 꺼진다.

 

6-8년 전 기억을 되짚어 보며 민사고 학생의 하루를 적어 보았는데, 이렇게 적고 보니 꽤나 암담해 보인다. 사실 열심히 살았으면 그렇게 보람찬 3년일 수가 없었을 텐데. 물론 열심히 산다고 힘들지 않다는 건 아니며, 실제로도 페이스북의 민사고 대나무숲에는 힘들다는 글이 종종 올라온다. 외로우며, 피곤하고, 지치는 삶이라는 말을 한다.

 

그럴 거다. 힘들 거다. 민사고 학생들의 대부분은 기숙사 입소 전까지 평생 부모님과 같이 살아 왔으며, 부모님이 해 주시는 밥을 먹었을 것이다. 공부도 반에서뿐만 아니라 학교 전체에서 최고로 잘했을 것이다. 그런데 민사고에 오니 자신의 경쟁 상대는 중학교 때까지의 '잡몹'들이 아닌 '보스'들뿐이며, 생활 역시 스스로 해야 한다. 적응이 힘들 뿐만 아니라, 그렇게 정신없는 생활 중에서도 자신의 꿈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아니면 나처럼 아예 꿈을 잃거나.

 

난 그랬다. 중학교 때 난 학교에서 최고의 인기남은 아니었지만 방과 후에 학원 간답시고 귀신같이 사라지는 놈 치고는 친구가 많았으며, 집에서는 아버지의 자랑이자 범생이 그 자체였다. 여느 민사고 입학생이 그랬듯이. 중학교 때는 민사고 합격이 목표였으며, 그게 내가 진정 원하던 것이었든 그렇게 교육받은 것이었든 난 민사고에 합격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공부를 했다. 그런데 정작 민사고에 합격하고 나니 그 다음 목표를 세울 수가 없었다. 영화 '다크나이트'에서 조커가 그런 대사를 친다.

"난 말야, 자동차를 쫓아다니는 개야. 막상 따라잡고 나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걸?"

난 조커마냥 민사고라는 자동차를 쫓아다니다가 마침내 그 자동차를 따라잡고 나서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 것이었다.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몰랐기 때문에, 유치원생 때 내뱉곤 했던 '난 기차가 좋아. 기차 운전사가 될래!' 같은 거 말고 진짜 장래희망이 뭔지도 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난 고삐 풀린 망아지마냥 기존의 내 '범생이' 이미지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3년 내내, 난 그 동안 내가 이뤄온 것들을 무너뜨렸다. 뒤돌아보면 나에게 무슨 마가 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처절히 스스로를 망가뜨렸다. 내 인간관계, 내 학업, 그리고 내 가족관계까지도.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즈음, 중학교 때 나름 인기 있던 나는 사라지고 친구라고는 한 손에 꼽을 수 있는 외톨이가 되어 있었고, 수업을 들었는데 도대체 뭘 배웠는지는 하나도 꼽을 수가 없는 바보가 되어 있었으며, 집에 가면 아버지에게 군대에서나 쓰일 것 같은 매로, 가끔씩은 가죽 벨트로 매타작을 받았다. 어찌나 자주 맞았는지 벨트 버클이 짤랑대는 소리가 몇 년간 트라우마가 되기도 했었다. 그런데 대학교 2학년 여름에 아버지와 대화를 하다가 알았다. 그때 아버지도 나만큼이나 아팠다는 걸.

 

아버지는 그 때 나를 고치기 위해 생각해 낸 게 고작 매질밖에 없었어서 미안하다고 그랬다. 난 굳이 사과를 받아야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나였어도 민사고 때의 나 같은 아들을 뒀으면 그런 생각이 들었을 것 같은데.

 

아무튼. 그렇게 고등학교 3년 동안 처절히 무너진 후 대학교에 들어가서야 천천히 스스로를 재건하기 시작했다. 단, 이번에는 혼자 힘으로 일어서야 했다. 중학교 때는 어머니가 옆에서 엄하게 지도를 하면서 공부를 했지만, 이젠 공부하는 습관도 스스로 다시 들여야 했으며, 사소한 사고방식 하나하나 내가 직접 만들어야 했다. 다행히도 그 결과물은 나쁘지 않은 것 같다. 그 동안 항상 옳은 생각을 하려 노력하며 살아 왔는데, 그 사고방식은 지켜진 듯하다. 내가 어렸을 적 부모님이 나에게서 바랬던 모습을 천천히 찾아가는 것 같기도 하고, 그와는 달리 나만의 주관을 확립하며 스스로에게 떳떳한 사람이 되어 가는 것 같기도 하다.

 

그 여정을 막 시작하던 대학교 2학년 여름은 다사다난했다. 캐나다의 집을 허름한 아파트에서 꽤나 괜찮은 하우스로 바꾸며 집을 새단장해야 했고, 그 일환으로 아버지와 나는 내 동생 방의 벽을 어두침침한 갈색에서 산뜻한 밝은 연두색 (연두색에 흰색을 많이 섞은 느낌이다) 으로 페인트칠을 하느라 진땀을 뺐고, 난 몸이 멀어지면 마음이 멀어진다는 말마따라 1년에 자주 만나지 못하는 부모님이 서로 싸우는 걸 말리느라 바빴다. 부모님 얘기는 다음 글에서 다룰 생각이니 잠시 접어 두자.

 

그 해 여름, 부모님이 화해를 한 후 어느 날 밤이었다. 동생은 이미 잠이 들었고, 부모님과 나는 수다를 떨다가 고등학교 얘기를 꺼냈다. 대략적인 주제는 고등학교 때는 내가 이렇게 다시 '정상적'인 사람으로 변할 줄 몰랐다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그랬다.

민사고 때는 몰랐지. 네가 다시 이렇게 (좋은 쪽으로) 변할 줄은. 시간이 다 해결해 주는 거지 뭐.

맞는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릴 때 아무리 철이 없었어도 결국 머리가 크기 마련이며,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결국 그렇게 몇 시간 동안이나 수다를 떨다가 부모님과 내가 내린 결론은 '시간이 약이다' 였다.

 

지금 민사고에 재학 중인 후배들 중에서도 나처럼 목표를 잃고 방황하는 친구들이 있을 것이다. 내가 민사고를 다닐 때에도 내 기수뿐만 아니라 선배 기수와 후배 기수에서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친구들의 부모님 역시 내 부모님처럼 걱정하고, 답답해하고, 안타까워하실 것이다. 요즘에는 민사고 학생들의 부모님들이 동아리 장이 누가 될지 같은 것들도 정한다더라, 하는 카더라가 있는데 제발 그 소문이 사실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걱정하는 것보단 믿음을 주는 것이 낫다. 그게 좀 힘들어도. 지금 안 하는데 나중에 한다는 게 말이 돼? 라고 생각이 들어도. 민사고 때 아무리 목표를 잃고 헤매도, 그건 고등학생이 으레 겪는 혼란일 뿐이다.

 

난 민사고에서 공부를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진 않는다. 운 좋게 공부를 안 하고도 공대만큼은 미국에서 꽤나 쳐주는 대학을 간 것보다 노력을 아예 하지 않았으니 후회할 게 없는 것이다. 오히려 후회되는 건 민사고 때 더 가까워질 수 있었던 사람들과 친해질 기회를 놓친 것이다. 그건 내가 그때 더 잘할 수 있는 것이었으니까. 고등학교 친구가 오래 가 봤자 얼마나 오래 가겠냐고 할 수도 있겠다마는, 지금 중학교 시절 친구와도 연락이 되고 초등학교 시절 친구(?)와도 연락이 닿는 걸 보면 대학교 전까지의 학창 시절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민사고 시절 친구를 더 많이 만들어 놓았으면 좋았을걸,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지금 민사고를 다니는 후배들에게도, 그리고 앞으로 민사고를 다닐 예비 후배들에게도 이런 얘기를 해 주고 싶다.  아니, 꼭 민사고가 아니더라도 고등학교 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있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이다. 어쩌면 내 스스로에게도 하고 싶은 말일지도 모르겠다.

 

고등학교 때 공부를 열심히 해서 대학에 잘 가야겠다는 목표는 이루지 못해도 됩니다. 아니, 그런 목표를 세우지도 않아도 됩니다. 지금 공부를 안 해도 아직 20년도 살지 않은 여러분들은 기회가 무궁무진합니다. 물론 노력을 하는 만큼 그 기회를 잡을 확률은 늘어나겠지만요.

 

전 여러분들이 고등학교 때 소중한 친구들을 많이 만났으면 합니다. 악기를 배우고 싶으면 지금 배우세요. 노래를 부르고 싶으면 (PLZ, Rhyme Factory 등 동아리), 춤을 추고 싶으면 (동아리 이름이 기억이 안 나네요), 별을 보고 싶으면 (민사고 공식 커플메이커 동아리 이름이 뭐였죠? 기숙사 옥상에 올라가서 별 볼 수 있는 동아리!), 농구를 하고 싶으면 (크로스오버), 지금 하세요. 공부는 미룰 수 있지만 이런 것들은 미루면 대학 가서도 못합니다.

 

공부를 하면서 다른 하고 싶은 것들도 열심히 하세요. 마지막 기회예요. 전 그렇게 하지 못했거든요. 역사는 반복되지만 제 실수는 여러분들이 저지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멋진 후배가 되어 주세요.

 

막상 써 놓고 보니 좀 오글거리기는 한다. 내가 가장 하고 싶은 말은 지금 안 하면 앞으로 할 수 없는 것들을 하라는 것이다. 내가 대학원에 온 이유도 그렇다. 돈이야 나중에 벌어도 잘 벌 자신이 있는데 공부는 지금 하지 않으면 억지로 그런 기회를 만들지 않는 이상 평생 배울 기회가 없어질 것 같아서였다. 지금 내가 위에 쓴 말대로 살고 있는가, 하면 그런 것 같다. 하고 싶은 연구를 하며 어울리고 싶은 사람들과만 어울리고, 공부 외에도 전체적인 건강과 근육량 등 내가 사람으로써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신경쓰며 산다.

 

무엇보다도, 미래에 대한 희망과 투지를 갖고 산다.

 

난 완벽한 사람이 아니지만,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없을 수도 있겠지만, 앞으로 대학에 오고 대학원에(...) 올 사람들에게도 하고 싶은 것들을 잊지 말고 살라고 말해 주고 싶다.

 

오늘의 추천곡은 악동뮤지션의 명곡 '오랜 날 오랜 밤'이다. 2017년 앨범 'WINTER'에 수록된 곡이다. 개인적으로 이수현 씨의 목소리를 너무나 좋아하는데, 그에 더해 이번에는 이찬혁 씨의 목소리까지 합쳐져 정말 '아름답다'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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