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hilosopher's Haven

어느 20대 후반 남자의 이런저런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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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중국인 방문 학생의 비극

abcdman95 2019. 8. 15. 14:39

U of I at Urbana-Champaign, overlooking the main quad from the Foellinger Auditorium.

University of Illinois at Urbana-Champaign, 한국명 어바나-샴페인 소재 일리노이 주립대학교는 캠퍼스 규모가 정말 크며, Urbana 시와 Champaign 시라는 소도시 두 곳의 경제를 상당부분 책임진다고 할 만큼 학생들이 많다. 내 기억으로는 학부생만 5만 명 가까이 되는데, 이래서인지 방학 때 캠퍼스 근교에 위치한 수많은 식당들을 보면 안쓰러우리만치 텅텅 비어 있고는 했다. 그리고 총인구 15만 명 남짓하는, 소도시라기도 민망하리만큼 작은 이 마을을 둘러보면 이 곳은 정말 심심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학교 경찰 (미국에서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대학들은 학교 소속의 경찰 조직을 따로 운영한다) 이 이따금씩 캠퍼스에서 일어난 크고작은 범죄들에 대한 정보를 학생들에게 이메일로 알려 주고는 하지만, 내가 4년 동안 다녔던 이 학교는 새벽 3시에 혼자 돌아다녀도 크게 안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안전한 곳이었다.

 

누가 알았으리라. 이렇게 조용했던 캠퍼스에서 미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살인 사건이 일어날 줄은. 그것도 몇몇 학부 한정이지만 미국 최고의 명문대 중 하나인 UIUC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던 학생이 범인일 줄은.

 

때는 2년 전 여름 방학이었다. 난 일리노이 주립대학교의 캠퍼스에 남아 연구 활동을 했고, 학기 중의 스트레스는 잠시 내려놓은 채 내가 즐기는 일을 하며 방학다운 방학을 보내고 있었다. 상당수의 학생들이 귀가하고 남겨진 학교는 미국 최대의 주립대 중 하나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한산했으며, 나 역시 1년에 몇 달밖에 오지 않는 이 평화를 행복하게 맞이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지금은 자세히 기억이 안 나지만 내 중국인 친구들 중 하나에게서 학교에서 어느 중국인 여학생이 실종되었다는 얘기를 들었었다. 위치는 내가 연구 일정 때문에 가끔씩 들르던 Frederick Seitz Materials Research Laboratory, 즉 프레데릭 사이츠 재료공학 연구소 근방이었다. 자료 사진이라고는 흐릿한 CCTV 캡쳐 이미지가 전부였지만 꽤나 친숙한 곳이었다. 솔직히 그 때는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큰일났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괜찮겠지, 라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정말 괜찮을 것이라 생각해서라기보다는 괜찮았으면 하는 마음이 컸기 때문일까.

 

Yingying Zhang (右) 납치 사건의 범인, Brendt Christensen (左)

범인은 생각보다 빨리 드러났다. UIUC 물리학과 박사 과정 대학원생이었던 Brendt Christensen, 브렌트 크리스찬슨이었다. 내 친구들 중 하나는 그에게서 물리학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며 소름끼쳐 하기도 하고, 누구는 왜 하필 자기 과인 물리학과냐며 억울함(?)을 표출하기도 했었다. 동기는 여느 남자가 여자를 납치하는 이유와 다르지 않았다. 성폭행을 하기 위해서. 당시 기사를 읽었던 기억으로는 그가 상대방을 구속한 채 성행위를 하는 SM플레이에 관심이 많았고, 범행을 저지르기 전부터 사람을 납치하는 법 등을 검색했다고 한다. 증거물은 그의 휴대폰이었다. 자신의 승용차를 타고 피해자에게 접근해 자신을 암행 경찰로 소개한 뒤, 라이드가 필요하면 그녀를 집에 데려다 주겠다고 했었단다. 사용된 차종은 새턴 아스트라라는 준중형차로, 대형 세단과 중형/준대형 SUV를 경찰차로 사용하는 미국에서는 암행 경찰에게도 제공하지 않는 차인데다 결정적으로 새턴이라는 브랜드는 2017년 당시 사라진 지 5년이 넘었던 브랜드인지라 일반 미국인이라면 속을 리가 없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피해자인 Yingying Zhang, 장잉잉은 미국에 잠시 방문 연구원으로 와 있었기 때문에 이를 알 수가 없었다. 내 기억으로는 CCTV상으로 장잉잉이 자발적으로 차에 탑승했었는데,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세계적으로 치안이 좋은 나라인 한국에서조차 생판 모르는 사람의 차를 타는 건 지양하는 분위기인데 미국에서 자발적으로 처음 보는 남자의 차를 탄다? 머리가 갸우뚱해지는 부분이다. 사건 후 어느 날 저녁 피해자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사람들이 Krannert Center라는 극장에 모였었는데, 그 당시 범인도 현장에 있었다고 한다. 자신의 범행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지 궁금했다나.

 

아무튼. 그 후는 비극의 연속이다. 장잉잉의 부모와 약혼남은 서둘러 미국을 방문해 그녀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 크리스찬슨 때문에 아직도 시신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이미 범인의 증언으로 사망은 확정이니 안타까움이 어디 가시겠냐만서도, 사건이 2년이나 지난 후에도 시신의 코빼기도 찾지 못한 건 답답한 일이다. 검색을 해 보니 시신을 매립지에 유기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기사가 약 2주 전에 나왔던데, 그 후 범행 후의 기록을 더 자세히 다룬 기사에서는 범인은 피해자의 시신을 토막내 3개의 검은 비닐봉지에 담은 후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 뒷편의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범행을 저지르는 데 쓰인 물건과 범행 후 흔적을 지우기 위해 사용한 물품을 모두 가방에 담아 역시 쓰레기통에 버렸단다. 어떻게 되었든 간에 장잉잉의 시신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일 확률이 높다. 정말 안타까우면서도 동시에 내가 4년간 몸담았던 학교에서 이런 흉악한 범죄가 일어났다는 생각에 섬뜩하다는 느낌까지 든다.

 

범인 브렌트 크리스찬슨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고 한다. 물론 그가 얼마나 무거운 형을 받든 피해자의 유족에게는 위안이 될 수 없으리라. 평생 가슴 아리는 흉터로 남겠지. 피해자가 겪었을 고통과 그보다도 심했을 두려움이 어땠을지 나는 상상할 수도 없다. 그저 안타까울 뿐.

 

May you rest in peace, Yingying Zhang. May you forget all the pain you felt before you passed. May you finally smile, albeit as but a spirit.

 

이번 글에는 Turin Brakes의 Save You를 선곡한다. 넷플릭스 자체제작 드라마인 '지정생존자'에 등장하는 곡이다. 추가로 드라마에 등장하는 대사를 적어 놓았다.

 

- You lose someone?

- Yeah... I lost every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