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hilosopher's Haven

어느 20대 후반 남자의 이런저런 이야기들

공돌이의 주저리주저리

지금은 없는 누군가를 기억하며.

abcdman95 2019. 7. 5. 14:10

 

오늘은 미국 독립기념일이다. 나야 한국인이니 전혀 의미 없는 날이지만, 적어도 주차하기는 쉬웠다. 햇빛에 차 달궈지지 말라고 간 크게 주차증도 없으면서 주차 건물에 세워 두고 연구실에 갔다. 당연히 아무도 없었다.

 

혼자 있을 때는 원래 온갖 잡생각이 드는데, 갑자기 할머니에 대해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아가 가족에 대한 얘기도 쓸지도 모른다. 여전히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쓸테니 사실 나도 이 글의 내용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먼저 외할머니는 날 보시지도 못하고 돌아가셨다. 정확히 무슨 암이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암에 걸리셨었다. 내가 태어나기 1년 전에 돌아가셨다니 내 부모님이 결혼하시기도 전에 돌아가시지 않았을까 한다. 부모님 결혼기념일이 크리스마스 이브니까. 그 생각을 할 때마다 엄마가 괜히 짠하다는 마음이 들었는데. 물론 엄마에게는 내 평생이 당신 평생의 절반도 안 되는 시간이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 아련한 그리움이 있지 않을까 한다. 나도 언젠가는 그런 그리움을 갖게 되겠지.

 

친할머니는 꽤나 최근에 돌아가셨다. 이제 2년 갓 넘었으니 말이다. 설 휴가 때였다. 미국에 있어 휴가를 나오지 않은 난 기숙사에서 자고 있었고, 일어났을 때는 카톡이 와 있었다. 할머니 돌아가셨다고. 공교롭게도 그 전날, 영상 통화로 조부모님께 안부 인사를 드렸었다. 후에 보면 운이 좋았는지, 할머니가 손자 얼굴 한 번 보실 때까지 힘들게 버티신 건지 그 영상 통화는 정말 잘 했다. 사실 당시에는 그닥 와닿지 않았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게. 대신 생각날 때마다 뭔가 진하게 물 속에 잠기는 듯한 느낌이 든다.

 

2014년 여름, 할머니께 마지막 인사를 드리던 날이 기억난다. 4년 후 대학 졸업하고 올 때까지 다시는 못 보면 어떡하냐며 눈물을 흘리셨다. 그 때는 그게 내가 보게 될 할머니의 처음이자 마지막 눈물일 줄 몰랐는데. 몇년 전 흥했던 드라마 별그대에서 나왔던 대사가 생각났었다. 작별 인사는 미리 하는 거라고. 막상 이별을 할 때가 오면 인사 따위는 할 시간이 없다고. 할머니가 건강에 큰 문제가 있으셨던 건 아니지만 할아버지에 비해 몸이 좀 약하셨는데, 1년만 더 살아 계셨으면 장손자도 보고 가셨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할머니가 돌아가신 건 스트레스도 있었다고 한다. 여기에 쓰지는 않겠지만,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오랜만에 가족이 모두 모여 수다를 떨다가 갑자기 할머니 얘기가 나온 날 듣게 된 과거사는 내가 어렸을 적부터 기억하던 할머니의 모든 모습을 이해시켜 주었다. 서울 남산에서 작은 식당을 운영하시던 모습, 거기서 먹었던 밥 한 끼, 그리고 설거지를 하시던 할머니의 뒷모습. 그 때는 왜 식당을 운영하시는지 몰랐는데 마치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퍼즐 조각들이 한순간에 맞춰지는 느낌이었다.

 

작년에 한국에 돌아왔을 때는 납골당에서 할머니를 뵈러 갔었다. 유학한답시고 장손자의 편지만 없는 것이 뭔가 허전했다. 그 후에도 한국에서의 일정이 너무 바빠서 할머니께 드릴 편지를 쓸 여유가 없었는데, 아직도 후회가 된다. 내년에 한국에 돌아가면 꼭 하나 써 올리려 한다. 다행히도 할머니를 기억하는 수많은 분들이 산 사람 부러울 만큼이나 편지를 가득 써 주셨었다.

 

그 때 할머니께 1년 반 늦은 인사를 드리면서 봤었다. 아빠의 눈시울이 붉어진 걸. 원망과 그리움이 공존하는 눈물이리라. 나도 울컥했었는데, 억지로 눈물을 참았던 기억이 난다. 납골당에 있는, 먼저 떠난 수많은 사람들과 그들을 그리워하는 사람들, 그리고 사랑하는 이들을 보낸 사람들이 남기고 간 편지를 봐서였을까. 가는 데 순서 없다고 부모보다 먼저 떠난 사람들도 있었고, 할머니처럼 그래도 오랜 동안 편하게 사시다가 편하게 떠나신 분들도 있었고, 심지어 내 또래 사람들도 있었다. 할머니와 그 곁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편하게 가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할머니가 계신 그 곳에 부치지는 못하지만, 여기에 쓰는 이 글이 할머니께 보내는 편지를 약간이나마, 잠시나마 대신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아직 정정히 살아 계신 친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는 내가 내년에 돌아갈 때까지 건강히 계셨으면 한다. 생각해 보면 어렸던 나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할아버지들의 모습이 여럿 떠오른다. 그분들이 돌아가신 후에도 이 글을 읽으며 내 부모님의 부모님들을 기억할 수 있으리라.

 

이번 글에 처음으로 추천곡을 포함하려 한다. 앞으로 쓰는 글에도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가급적이면 이번처럼 분위기에 어울리게 선곡할 예정이다.

 

이 글에는 잔나비의 2014년 앨범 [See Your Eyes]에 수록된 'November Rain'을 선곡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