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연구는 그런 거다. 실험이 실패하면 그 원인을 찾아 해결하는 것. 실패가 없는 실험은 없다. 심지어 레시피를 정확히 숙지해도 망할 수 있는 게 실험이다.
삶이 으레 그렇지만 말이다.
이번 주가 연구 생활 최악의 일주일이 아닌가 한다. 실험이 연속으로 망하고 있다. 하루에 잡을 수 있는 실험은 딱 하나뿐인데, 그 실험이 계속 실패한다. 원인조차도 잘 모르겠다. 총체적 난국이다.
실험이라기도 뭣하다 사실. 실험이라기보다는 본격적인 실험 전 공정에 가깝다. MoS2 결정이 붙어 있는 테이프에 금박을 씌우는 것. 약 40 nm 두께의 순금 박막이 입혀져야 한다. 엄밀히 말하면 굉장히 간단한 단계이다. 그런데 원인 모를 오염 물질이 계속 유입된다. 처음 EDS (Energy-Dispersive X-ray Spectroscopy, 에너지분산형 분광분석법) 를 통해 샘플 분석을 해 보았을 때는 소량의 은이 검출되었는데, 그 외에는 도대체 뭐가 있을지 상상이 가지가 않는다. 순금 덩어리가 크롬과 같이 보관되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상호 오염의 위험성 때문에 전자 빔 증착용 금속 소스는 격리 보관해야 한다) 크롬일 것 같기도 하다.
상호 오염이 사실이라면 증착에 쓰이는 금 자체가 문제라는 말이니 결국 금을 새로 구입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나도 잘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11월 중순에 유타 주에서 열리는 ASME (미국 기계공학회) 에서 주최하는 컨퍼런스에 발표자로 참석할 예정이라 그 때까지는 유의미한 연구 결과가 나와야 하는데, 지금 상황에서는 애매하다. 금 박막을 씌우는 데 성공한다 해도 몇 가지 단계를 거쳐야 결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단층 MoS2에 쌓인 오염 물질을 AFM의 스퀴지 기법을 이용해 제거한 후, 다른 단층 MoS2을 그 위에 쌓는 레시피부터 정립해야 한다. 다음은 수소 플라즈마로든 희석된 질산으로든 적절한(?) 에칭을 이루어 무아레 패턴을 만들어야 한다.
고작 한달 반 남짓 남았다.
할 수 있을까?
아니 정말. 할 수 있을까?
계획이야 누구나 세울 수 있다. 이렇게 저렇게 하면 이 정도의 시간이 걸릴 테지, 라고 누구나 생각할 수 있다. 근데 그 예측이 빗나갔을 경우 대처법을 떠올리는 건 쉽지 않다. 지금 그 예측이 빗나가서, 금 박막을 나름 간단하게 씌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예상이 너무나도 어처구니 없이 빗나가서, 당황하고 있다.
그래, 누구에게나 실패는 온다. 특히 연구를 할 때. 대학원생이 배우는 게 자기 전공에 대한 전문 지식 외에도 이런 것들이 아닐까 한다.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법. 스타 트렉 시리즈에서 함장은 함선이 격침당할 위기에서도, 자신이 죽을 위기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교육받는 것처럼, 실험이 망가져도, 결과가 나오지 않아 멘탈이 붕괴될 것만 같은 상황에서도 정신줄을 꽉 잡고 침착하게 실험을 이어나가는 법.
지금 딱 그런 기분이다.
정신줄 놓고 날뛰는 말을 타고 떨어지지 않으려 고삐를 꽉 쥐고 있는,
그런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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