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hilosopher's Haven

어느 20대 후반 남자의 이런저런 이야기들

공돌이의 주저리주저리

오랜만에 돌아왔다.

abcdman95 2020. 1. 14. 09:06

그 동안 이런저런 바쁜 일이 있었다 보니 글을 쓸 여유가 딱히 없었는데, 오늘 갑자기 드는 생각이 있어 글을 쓴다. 지난 한 달간 학기도 마무리하고 연구도 하고 여행도 가고 했는데 딱히 글을 쓸 만한 게 없어서 미루고 있었다. 오늘의 주제는 여느 때처럼 딱히 없이 의식의 흐름대로 쓸 생각이다.

 

나에게는 15년간 얼굴을 보지 못한 소위 '여사친' A가 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이후로 만나거나 연락을 한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당시 공부를 잘하던 친구였다. 내가 공부에 관해서 은근 긴장을 하게 만드는 몇 안 되는 상대(?)였다고나 할까? 그리고 좀 웃기지만, 그리고 A에게는 민망해서(...) 말을 못 하겠지만 당시의 나는 이 친구를 좋아했었다. 뭐 초등학생의 사랑이 으레 그렇듯 풋풋한 짝사랑으로 남았지만. 그 외에는 A가 꽤나 착했다는 기억이 난다. 이런저런 썰이 있는데 그닥 자세히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아무튼 A랑 인스타그램에서 며칠에 한 번 꼴로 연락을 하는데, 오늘 오랜만에 연톡(?)을 하게 됐다. 이유인즉슨 이 친구가 잠이 안 오는 데다가 (새벽 3시가 넘었는데!) 난 AFM 실험을 돌려 놓고 멍때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항상 어느 친구던 간에 친구와의 대화는 내가 쓰는 글만큼이나 중구난방이며 의식의 흐름대로 흘러가기 마련인데, A와는 대학원생의 삶과 고충(?)에 대한 얘기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연애 얘기로 넘어가게 되었다. 내가 벌써 이런 나이가 되었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가 않지만 아무래도 이제는 연애를 할 때 결혼도 염두에 두고 만나야 할 때다 보니 상대방이 가졌으면 하는 직업 등이 있게 마련인데, A도 그런 것 같았다. 남자가 의사였으면 좋겠다고 하던데. 그 친구에게는 공대부심 있는 남자 앞에서 의사가 좋다고 말하면 내가 뭐가 되냐며 농담을 했지만, 덜컥 걱정이 되기도 했다. 공대 대학원생은 여자 입장에서 좀 별로인가....?

 

앞으로 인생의 큰 고비가 첫 번째로 대학원, 그리고 두 번째로 결혼일 것 같은데, 첫 번째 고비야 인맥이 꽤 있으니 어떻게 해결한다 해도 두 번째는 도무지 모르겠다. 예전에 있던 글에 적긴 했지만 난 대학원생 중에 만나는 여자와 결혼을 하고 싶다. 복잡한 이유랄 것까지는 없고 그저 내가 대학원을 다니며 얼마 되지 않는 수입으로 아둥바둥 사는 꼴(?)을 묵묵히 지켜봐 주는 것에 대한 고마움과 보답이랄까. 하지만 그런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은 곳이 대학원, 그것도 공학 대학원이다.

 

난 공대를 딱히 출세의 수단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2013년 겨울, 민사고 3학년으로써 원서를 쓰느라 바쁘던 시절 나는 내가 뭘 하고 싶은지에 대한 개념이 전혀 박혀 있지 않았기에 내가 그 동안 해 왔던 이과 공부를 토대로 기계공학과에 지원했으며, 대학교 2학년이 끝나갈 때가 되어서야 기계공학과에서 내가 정확히 무엇을 하고 싶은지 정할 수 있었다. 뜬금없지만 2016년 여름방학 어느 저녁, 발코니에 나와 난간에 몸을 기대고 기네스 맥주를 마시며 시원한 바람을 쐬던 도중 든 생각이었다. 그 동안 대학원생 형들이 자신들의 연구를 발표할 때마다 그 내용이 나에게는 너무 난해했었는데, '나도 저런 연구 발표를 하고 싶어!' 라는, 순진하다면 순진한 발상으로 대학원에 오게 되었다. 꿈이 있었고 그 꿈을 좇았다기보다는 잘하는 걸 하다 보니 좋아하는 걸 찾은, 운이 좋은 케이스이다. 다행스럽게도 기계공학과, 특히 내가 전공하는 나노공학 쪽은 전망이 꽤나 있는 분야라 좋아하고 잘하는 걸 하면서 굶을 일은 없을 듯하다.

 

그런데 의대가 좋다니. 헙... 물론 A가 한국의 모든 여자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건 아니겠지만 나름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나와 친한 두 여사친 중 한 명의 입장이라서. 다른 여사친 B는 딱히 그런 것까지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기는 하지만 그건 사실 B가 아직 학부생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A는 작년 중순에 초등학교 교사로 취직을 했으니 그만큼 결혼에 대한 생각이 더 구체화되어 있을 수도? 하여튼 공대 대학원생인 내가 결혼/연애 시장에서 밀리지 않는 옵션이었으면 좋겠다. 연애 경험이 많지 않고, 여자를 친구가 아닌 '여자'로 대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으며, 감정 표현이 좀 서툴다는 게 괜찮다면. 적고 보니 공대 남자의 특징을 적어 놓은 것 같지만 실제로 나도 이렇기 때문에 딱히 할 말이 없다.

 

난 이미 일에 관련해서 이런저런 것들을 계산하며 살아 왔기 때문에 대인관계에서까지 사람을 가려 만나는 것을 싫어한다. 연애에서도 그렇다. 그저 내가 그 사람이 좋고, 그 사람이 내가 좋으면 끝. 서로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을 만나면 더 이상 바랄 것이 많지 않을 것 같다.

 

요즘 좀 외롭다. 물론 그렇다고 지금 연애를 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예전에 스스로에게 맹세한 것처럼 한국에 갈 때까지는 '난 일하는 기계요'라고 생각하며 살 것이다. 한국에 가면 일이 제발 좀 잘 풀렸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