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hilosopher's Haven

어느 20대 후반 남자의 이런저런 이야기들

공돌이의 주저리주저리

화낼 때와 화내지 않을 때를 가려서

abcdman95 2019. 10. 3. 06:27

 

어릴 적 아버지는 나에게 '해피보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뭘 하든 싱글벙글 웃는 상이라서 그렇단다. 실제로도 힘든 일이 있어도 슬픔에 젖기보다는 웃어넘기는 성격이다. 어릴 때는 수학 공부를 하다가 방문 앞으로 아버지가 지나가면 씨익 웃어 보였고, 지금은 주변 사람들에게는 항상 개그 넘치는 모습만 보여주며 어려운 고민은 누구에게 말하기보다 혼자 해결하는 성격이다.

 

천성이 그렇다 보니 내가 진지한 모습을 보이면 주변에서 '너 무슨 일 있냐'고 묻는, 웃지 못할 일이 생기고는 한다. 며칠에 한 번씩 저녁때 어머니에게 전화하면 시덥잖은 농담따먹기를 하곤 하는데, 그 때마다 내 목소리가 조용하면 어머니가 뭐 힘든 일 있는 거냐고 물어본다. 난 그냥 졸려서 그런 건데. 친구들도 내가 화가 난 건지 기분이 좋은 건지 구분이 안 간다는 말을 하곤 한다. 표정을 읽을 수가 없다나. 아무튼 살다 보면 기분 상하는 일도 있고, 오늘 하루를 어떻게 버티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는 법인데, 난 다행히도 대부분의 악재를 내 감정의 울타리로 쉽게 튕겨내는 성격이다. 그런데 조용한 사람이 화나면 더 무섭다고, 난 화가 나면 살짝 기분이 나쁜 정도가 아니라 '분노'로 변해 버린다. 순식간에 불타올랐다가 얼마 안 지나 식어 버리는 불 같다고나 할까.

 

몇 달 전, 마이애미에서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오는 연수팀의 한국어/영어 통역을 돕는 일을 사흘 간 한 적이 있다. 당시에는 기분 좋게 사람들을 만났다가 기분 좋게 헤어졌는데, 제일 중요한 돈 문제가 미해결 상태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 측에서 시급 10만원에 총합 140만원을 지급하기로 했었는데, 일 자체는 6월 말에 끝났는데도 은행 계좌 문제로 몇 달이 지연된 것이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다. 하다못해 학부 때 처음 학비를 내던 당시, 미국에 전국적으로 지점을 둔 대형 은행도 아니고 일리노이 근방에서만 영업하는 지방 은행에 엄마가 돈을 한 번에 성공적으로 송금해준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걸 한 재단의 회계팀이 못한다는 말도 안되는 핑계는 차치하고, 약 한 달 전에 한국에 있으며 내 명의로 된 계좌를 용케 찾아내 그 계좌번호를 불러 줬음에도 아직도 송금을 안했다는 건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한국언론진흥재단 측에서는 회계팀이 9월까지 처리할 일이 있었다느니, 송금하는데 오류가 난다느니 하며 지급을 미루고 있다.

 

뭐 어차피 몇 달이나 늦은 거 좀 더 늦어도 괜찮겠지 하는 생각인가?

 

젊은 놈이니 뭐 지가 어떻게 하겠어 하는 심보인가?

 

돈은 안 주고 입 싹 닫으려는 건가?

 

아무튼 기다릴 만큼 기다려 줬으니 다음 주 수요일까지 입금 안 되면 돈을 줄 생각이 없는 걸로 이해하겠다고 최종 통보를 했다. 수요일이 지나면 나도 일을 크게 벌일 생각이다. 난 남을 등쳐먹지 않되 내가 등쳐먹혀도(?)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데, 이번 역시 똑같다. 140만원이면 나중에는 큰 돈이 아닐지 모르지만 지금은 꽤나 큰 돈이기에 안 받을 수도 없으며, 가뜩이나 연구 일정 때문에 바쁜데 계속 이걸 신경쓰는 것도 '내가 왜 지금까지 이걸 신경써야 해?'라는 생각이 든다.

 

돌아오는 수요일에 어떻게 될지 지켜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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