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hilosopher's Haven

어느 20대 후반 남자의 이런저런 이야기들

일상이야기

운동해야지

abcdman95 2019. 8. 1. 03:42

어바나-샴페인 소재의 일리노이 주립대에서 학부 때는 차가 없고 날씨도 선선한 데다가 캠퍼스도 꽤 조용해서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기 수월했다. 버스가 있기는 했지만 단지 편의사항일 뿐, 가끔씩 수업이 연달아 있는 날에는 느긋하게 버스를 기다릴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자전거는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오히려 차를 몰고 다니는 게 불편해 보일 정도로 학교는 주차하기가 불편한 곳이었다.

 

2017년 여름의 어느 금요일 저녁, 연구실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와서 불금이랍시고 놀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날따라 마음이 너무 갑갑했다. 영화를 보려 해도 집중이 되지를 않고, 어딘가 뛰쳐나가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마음 가는 곳에 몸이 따라 간다고, 자정이 다 되어 가는 시간에 자전거를 타고 무작정 교외로 향했다. 학교가 깡촌까지는 아니지만 꽤나 작은 도시에 위치하다 보니 주변에는 옥수수밭이 많았는데, 휴대폰으로 대충 지도를 훑어본 후 옥수수밭을 가로지르는 도로를 탔다. 가로등이 없다 보니 자전거 전조등이 없으면 정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웠다. 그런데 하늘을 보면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캠퍼스 내에서는 가로등 때문에 보이지 않던 별들이 너무나도 많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날 밤, 한 시간 동안 15-20km 가량을 잠시 하늘도 올려보고 하면서 달렸다. 그리고 그 후, 난 두어 달 동안 매주 금요일 밤에 자전거를 타고 옥수수밭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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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으로 그 자전거를 타다가 사고가 난 적도 있었다. 한 주를 바쁘게 지내다 보면 사소한 것들을 까먹을 때가 있는데, 그 날은 저녁 때 양자물리학 퀴즈가 있던 날이라 깜빡하고 자전거 전조등을 충전하지 않은 날이었다. 망쳤다고 생각했던 퀴즈를 97점을 받은 후 기쁜 마음으로 자전거를 타고 집을 나섰고, 옥수수밭에 들어설 때쯤 전조등이 깜빡거렸는데, 불길한 징조였지만 무시하고 달렸다. 그게 사고의 발단이 될 줄이야 난 몰랐지.

 

그날따라 하늘이 유난히 아름다웠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난 포장도로를 달리면서 하늘을 올려다 보았고, 그새 내 자전거는 도로 옆의 자갈밭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리고 자전거가 갑자기 자갈밭에 들어가 휘청거릴 때는 이미 늦었었다. 자전거는 왼쪽으로 넘어갔고, 나는 손으로 충격을 완화시키려다가 왼쪽 볼에 약간 상처를 입고 손과 무릎이 심하게 긁혔다. 아프기야 아팠지만 사실 난 너무 어이가 없어서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또 다친 상처가 욱신거리긴 꽤나 욱신거려서 자전거를 다시 타고 집으로 갈 엄두가 나지는 않았다. 이미 옥수수밭 한가운데에 들어온 후였기에. 다행히도 룸메이트는 차가 있었고, 그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긴급후송(?)을 부탁했다. 집에 돌아온 후에는 간단하게 소독을 했는데, 손에 상처가 너무 많아서 이게 사람 손인지 미라 손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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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얼굴은 별로 안 다쳤다. 불행 중 다행이다.

 

그 후 몇 달 동안 웃을 때마다 왼쪽 갈비뼈가 아팠는데, 금이 갔던 것일 수도 있는데 난 그 가능성을 다 나은 후에야 깨달았다. 고통이 없어진 후에야 내가 그때 갈비뼈가 금이 갔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뼈에 금이 간 것을 모를 수도 있는지는 애써 무시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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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대학원에 온 후에도 자전거를 타기는 했는데 일단 너무 덥고 비가 자주 온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미 차가 있다. 차가 있는데 자전거를 굳이 탈 이유가 없고, 이 날씨에 자전거를 타고 연구실에 도착할 즈음에는 이미 땀범벅이 되어 있을 테니 자전거가 쓸모가 없다.

 

대신 학부 때 하던 것 그대로 아령을 하나 사서 그것으로 운동을 한다. 물론 학부 때는 15파운드(6kg)짜리 2개와 20파운드(8kg)짜리 1개를 사용했는데, 그걸 기억을 잘못해서 의도치 않게 25파운드(10kg)를 사긴 했지만. 그 10kg 아령 하나로 상체 운동을 한다. 하체는 연구실에서 원자 현미경으로 스캔 하나 시작한 후 기다리는 동안 스쿼트를 하거나 하는 식으로 운동을 한다.

 

유산소 운동이 문제인데, 배드민턴을 치고 싶어도 시간이 도무지 나지를 않는다. 한국에 있었으면 등산이라도 할 텐데. 작년 여름에 한국에 갔을 때 설악산의 울산암에 오른 적이 있는데, 그 때는 나름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던 시절인데도 불구하고 산 오르는 게 그렇게나 힘들었다. 지금은 체력이 얼마나 더 떨어졌을지 상상하기도 싫다. 무산소 운동만 줄창 해 대니...

 

자전거에 기름칠도 다시 하고 타이어도 관리해서 억지로라도 차를 놔두고 자전거를 타고 나가야겠다. 어차피 팔 물건이지만 팔기 전까지는 계속 사용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