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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누아르 CPU 기반 HP 엔비 13 x360 리뷰

abcdman95 2020. 6. 18. 14:09

약 한달 전, 난 지난 1년간 잘 사용하던 서피스 랩탑을 이베이에서 중고로 팔아넘긴 후 2018년형 델 XPS 13 9370을 구매했다. 인텔 코어 i5-8250U와 8GB의 RAM, 그리고 128GB의 SSD가 장착된 기본형 사양이지만 디스플레이는 4K 해상도인 모델이었다. SSD의 조악한 성능과 용량에 식겁한 나는 바로 그 SSD를 떼어 버리고 Sabrent의 512GB NVMe SSD를 달아 주었고, 그 상태로 그럭저럭 만족했었다.

 

하지만 델의 허접한 QC (quality control, 품질관리) 수준은 XPS라는 간지나는 이름과 한 회사의 플래그십 브랜드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았고, 머지않아 단점이 눈에 띄게 보이기 시작했다. SSD를 교체할 때 나를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었던 써멀 구리스는 딱딱하게 굳어 있었고, 상판을 닫으면 상판의 왼쪽이 아주 살짝 들려 보였으며, XPS의 고질적인 문제인 코일와이닝 역시 처음에는 딱히 안 느껴지더니 콩깍지가 벗기자마자 신경이 쓰였다.

 

정가로 구매하면 한화로 약 120만원 이상 하는 플래그십 모델을 난 꽤 저렴한 가격에 구매한 노트북이었기에 나름 만족하며 사용할 수도 있었지만, 거창하게 윈도우 진영의 맥북 대항마라는 수식어까지 붙었던 모델이자 한 회사의 최고급 모델이라고 만들어 놓은게 이따위 품질이었다는 것이 도저히 용서가 되지 않았다. 더불어 7세대 i5에서 공정개선 없이 코어 수만 두 배로 늘린 i5-8250U의 엄청난 발열은 견디기 힘들었고, 이 CPU의 내장 그래픽에 굳이 4K 해상도의 디스플레이를 붙여 가뜩이나 부족한 그래픽 성능을 더더욱 악화시키는 건 이해할 수가 없었다.

 

XPS는 프리미엄 노트북이 아니다. 그저 프리미엄 노트북이 되고 싶지만 품질관리가 개판이라 진정한 프리미엄 노트북이 될 수 없는 노트북일 뿐.

 

아무튼 XPS 역시 이베이에서 중고로 팔아넘긴 후 구매한 모델은 HP의 Envy 13 x360였다. HP야 엄마가 집에서 8년째 아무 문제 없이 사용하고 있는 브랜드이기도 하고, 결정적으로 AMD의 최신형 모바일 CPU 중 저전력 라인업의 고급형 모델인 라이젠 7 4700U가 탑재된 노트북 중 가장 고급스러운 노트북이었다. 레노버의 아이디어패드 5도 존재하며 에이서의 스위프트 3도 있었지만, 레노버도 에이서도 디자인 면에서는 HP보다 한참 아래였다. 가격은 XPS와 비슷한 $800. 사양은 아래와 같다.

 

CPU: AMD 라이젠 7 4700U

RAM: 8GB DDR4 3200 MHz

SSD: 256GB M.2 NVMe

디스플레이: 1920 x 1080 IPS, 400 nits, 72% NTSC

 

360도 돌아가는 힌지와 웹캠 킬스위치, 그리고 두 개의 USB 3.0 포트와 한 개의 PD 지원 USB-C 포트까지, 갖출 건 다 갖춘 셈이다. 충전 단자가 전용 단자이긴 하지만 그 정도야 뭐. 그리고 HP의 플래그십 모델인 스펙터와는 달리 꽤나 단순하지만 고급스러운 디자인을 보여준다. HP의 고급형 노트북에 박히는 사선로고는 덤. 언제부터 이 사선로고가 등장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이 로고, 참 마음에 든다.

 

 

좌측에는 3.5mm 단자, USB 3.0 단자, 그리고 USB-C 단자가 1개씩 위치해 있다. 독특한 점이라면 얇은 디자인을 위해 USB 3.0 단자에 독특한 메커니즘을 도입했다는 것이다. 울트라북에서 간간히 모이는 접이식 LAN 포트와 비슷한 느낌이다. 애초에 USB 포트를 사용할 일이 많지 않으나 필요할 때 굳이 어댑터까지 사용하고 싶지는 않은 나에게는 정말 좋은 디자인 요소이다.

 

 

우측에는 충전 단자, USB 3.0 단자, 그리고 마이크로 SD카드 리더기가 있다. 충전 단자가 USB-C였으면 정말 좋았겠지만, 이 정도 가격대의 노트북에서 그런 것까지 바라는 건 좀 무리겠지 싶다. 이 쪽의 USB 3.0 단자 역시 접이식이다. 심지어 좌우측의 USB 단자가 대칭형으로 위치해 있다. 독특하면서도 참 고마운 디테일이다. 사족이지만 내구성이 뛰어날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뭐 그래도 문제가 생기기야 하겠냐마는. 마이크로 SD카드 슬롯은 사용할 일은 딱히 없으리라 생각된다. 굳이 SSD를 교체하고 싶지는 않지만 저장 공간이 더 필요할 때 카드 하나 꼽는 식으로 문제해결이 가능할 듯하다.

 

 

키보드는 델의 XPS와 비교했을 때 약간 더 낫다는 생각이 든다. 키 자체가 더 큰 것도 있고, 키를 누를 때 힘이 살짝 덜 든다고나 할까. 최신형 XPS는 그렇지 않지만 내가 사용했던 XPS 9370은 방향키와 Page Up, Page Down 키가 같이 있어 정말 성가셨는데, 이 노트북은 아예 메인 키보드를 좌측으로 한 칸 밀어 버리고 가장 오른쪽 한 열에 Page Up/Down과 Home/End 키를 달아 놓았다. 문서작성을 자주 하는 사람들에게 꽤나 유용한 키 배치이지 싶다. 참고로 방향키 바로 왼쪽에는 지문인식기가 있는데, 일반 정사각형 키와 같은 크기인데다가 키보드에 떡하니 위치해 있어 살짝 이상하긴 하지만 (약간 키 하나 잃어버린 느낌이랄까)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든다.

 

 

팜레스트 좌측 상단에는 간결하게 ENVY를 적어놓았다. 이런 디자인 포인트, 꽤나 마음에 든다. 아래에 보이다시피 같은 디자인 포인트를 노트북 힌지 부분에도 적용했는데, 화려한 디자인의 스펙터처럼 '짜잔!' 하는 것이 아니라 조용하게 매력발산을 한다는 느낌이 든다.

 

 

지금까지 이틀간 사용해 보았는데, 일단 성능면에서는 당연한 얘기지만 대만족이다. 애초에 라이젠 7 4700U는 10세대 저전력 i7쯤은 가뿐히 뛰어넘는 성능을 보여주며, 내장그래픽의 성능 역시 엔비디아의 보급형 외장그래픽인 MX250 정도의 성능을 지녔기 때문에 성능 면에서는 뭐라 할 수 없다. 어느 정도 부하를 걸어도 살짝 따뜻해질 뿐, XPS에서 볼 수 있었던 엄청난 발열은 없었다. 배터리는 XPS에 비해 살짝 부족하지만 6-7시간 정도 가는 배터리는 나에겐 충분하며, 화면은 400nit의 밝기를 지녀 불편하다고 하긴 힘든 수준이다. 1000nit 옵션도 있지만 그 밝기를 누가 써?

 

아래는 Cinebench R20로 벤치마크 테스트를 진행해 본 결과이다. HP Command Center 에서 '성능' 모드로 진행하였다. 최고 성능은 몇 세대 전 인텔 데스크탑 CPU 중 플래그십 모델이었던 i7-7700K를 능가하는 수준이다. 물론 울트라북의 쿨링 성능의 한계로 인해 이 최고 성능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은 데스크탑 CPU에 비할 바가 못 되고, 그저 필요할 때에는 엄청난 고성능을 뽑아 줄 수 있다는 정도로만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XPS에 달려 있던 i5-8250U가 간신히 1500점대에 턱걸이했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이 녀석은 정말이지 순수 CPU 성능 면에서는 대만족이다.

 

 

디스플레이는 최대 400nits의 밝기를 가진 FHD (1920x1080) 해상도의 13.3인치를 사용한다. 예전에 13.3인치급 화면에서는 4k나 FHD나 딱히 차이 없으며 사진이나 영상편집을 주로 하는 것이 아니면 4k는 오버킬이라는 얘기가 있었는데, 진짜로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FHD도 꽤 괜찮다. 물론 15인치였으면 얘기가 달라졌겠지만. 최대 밝기가 약간 애매하다는 느낌이 들긴 하는데, 어차피 최대 밝기로 쓸 일도 별로 없어 그런 말을 하는 건 좀 배부른 소리인 것 같기도 하다. 검색해 보니 NTSC가 72%라는 얘기를 들었다.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색재현력이 뛰어난 편이라는 쪽으로 이해하면 되지 않을까 한다.

 

SSD는 도시바 KIOXIA의 NVMe SSD가 탑재되었다. 내가 사용하는 모델은 256GB가 달려있는데, 512GB처럼 넉넉하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지만 어차피 이 노트북으로 사용하는 프로그램이 한정적인 나로서는 256GB 정도면 딱 적절한 용량이다. 속도 자체는 체감상일 뿐이지만 내가 사용하던 XPS 9370의 순정 128GB SSD보다 훨씬 빠르다는 느낌이 든다. 애초에 XPS 9370에 달려 있던 SSD는 SATA 규격이었고, 이 노트북에 달린 건 NVMe 규격이니 그럴 밖에. 비슷한 맥락에서 내 데스크탑의 주 디스크로 쓰는 삼성 970 EVO 500GB에 비해서는 꽤 느린 편이다. 뭐 데스크탑은 견적 낼 때부터 최고의 부품만 사용하기로 했으니 역시 그럴 밖에.

 

RAM은 DDR4 3200 MHz 8GB인데 역시 그럭저럭 괜찮은 용량이다. 16GB면 금상첨화였겠지만 그건 내 데스크탑에서도 다 못쓰는걸... 그나마 클럭이 보통 사용하는 2666 MHz나 2933 MHz가 아니라 통상적으로 AMD CPU와 좋은 궁합을 보이는 수준의 3200 MHz로 높다는 게 장점이랄까.

 

이제 기변은 그만해도 좋을 것 같다. 서피스 랩탑에서 XPS로 넘어와 한 달만에 엔비로 넘어오게 되었는데, 엔비는 후회 없는 선택이 되었다. 오래 사용한 것도 아니지만 이 녀석이야말로 내가 앞으로 4-5년간 사용하게 될 노트북으로서의 자격을 갖추었다는 생각이 든다. 디자인은 거의 만점이며, 마감상 살짝 부족한 부분이 조금씩 보이긴 하지만 성능과 디스플레이, 배터리 성능 등 모든 것을 갖춘 노트북이라 용서해줄 수 있다.

 

전체적으로 대만족이다. 아직 한국에는 출시가 안 된 것 같지만 미국에서는 갓 출시된, 그래서 공식적인 리뷰도 얼마 존재하지 않는 제품이다. 역시 HP를 믿어야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