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hilosopher's Haven

어느 20대 후반 남자의 이런저런 이야기들

일상이야기

자동차 자가정비 썰

abcdman95 2022. 3. 3. 23:59

자주 하는 얘기지만 난 자동차를 좋아한다. 그것도 꽤 많이. 하지만 내 취향은 한국에서 차를 좋아한다고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약간 다르다. 난 튜닝이나 신차에는 큰 관심이 없고, 자동차의 유지보수에 관심을 갖는다. 어떤 부품이 어떤 역할을 하기 때문에 어떤 증상이 있을 경우 이렇게 교체하면 좋다, 뭐 이런 것들? 어떻게 보면 지극히 현실적인 관심사이다. 튜닝이나 신차에 관심을 가져 봤자 내가 돈 들여서 자동차 튜닝을 할 성격도 아니고, 새로 나온 차가 어쩌고 저쩌고 해봤자 내가 지금 살 게 아니니까 관심을 안 갖는 것이다.

 

그에 반해 자동차의 유지보수는 신차를 몰아도 중고차를 몰아도 중요한 주제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어느 정도 연식이 있는 자동차를 운용할 경우 더더욱. 나는 지금 2003년식 볼보 XC90, 즉 유지보수가 가장 까다롭다는 구형 외제차를 몬다. 돈이 많아서는 아니고, 어차피 3년 몰 차에 목돈을 쓰기는 싫고 취향껏 볼보는 타고 싶고 해서. 오히려 국산차와는 궤를 달리하는 그 수리비를 감당하기 위해 내가 직접 공부하며 차를 유지한다.

 

나는 오래된 자동차를 모는 만큼 이런저런 문제를 직접 감지하기 위해 운전할 때마다 신경을 곤두세운다. 핸들을 돌릴 때 조향감이 어떤지, 과속방지턱을 넘을 때 현가장치가 괜찮은지, 정차해 있을 때 엔진 소리가 부드러운지, 주행 시에는 변속이 제때 되는지, 그리고 엔진 RPM이 규칙적으로 반응하는지 등등. 제3자 입장에서는 내가 운전하는 방식이 약간 피곤해 보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하지만 이렇게 자동차에 신경을 써 줘야 내가 즐기는 운전을 정말 '즐겁게' 할 수 있고, 내 안전에도 악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동시에 지갑이 탈탈 털리지 않는다.

 

그 첫 예시는 히터코어 교체였다. 전에도 적었지만 볼보 공식 정비소에서 하라는 대로 했으면 써모스탯 수리비 40만원에 히터코어 교체비 95만원이 날아갔을 작업이었다. 그걸 난 직접 자동차에 대해 공부하고 직접 부품을 골라 주문해서 직접 교체함으로써 15만원 남짓한 비용으로 완료했고. 그리고 지금은 그렇게 수리한 히터를 빵빵하게 틀면서 돌아다닌다.

 

이어서 며칠 전, 자동차의 컨트롤암을 교체했다. 컨트롤암이야 뭐 예전에 S60 몰던 시절에도 한 번 교체하는 걸 본 적이 있으니 괜찮겠다 싶었고, 심지어 내 차종으로 컨트롤암을 교체하는 유튜브 영상까지 시청한 터라 자신감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뭐, 꼴랑 두 번 봤다고 자신있어하는 모습에서 이미 감이 왔겠지만 현실은 시궁창이다(?).

 

 

동세대 P2 플랫폼을 쓰는 모든 볼보 차량들이 그렇지만 볼보 XC90의 컨트롤암을 교체할 때는 볼조인트에 체결된 너트를 먼저 풀어야 한다. 그리고 나서 프레임에 연결된 볼트 3개를 풀면 컨트롤암을 떼어낼 수 있다. 근데 난 작업을 할 때 프레임에 연결된 볼트를 먼저 풀어 버렸고, 해서 볼조인트에 체결된 너트를 풀어도 20년간 생긴 표면 녹과 눌러붙은 컨트롤암은 분리되지를 않았다. 사장님께 SOS를 요청했지만 망치로 신나게 때려제끼는(?) 법밖에는 답이 없다고 하셨고, 그것마저도 안될 경우 토치로 구워 보거나 공업사로 가서 산소로 지져야 한다고 하셨다. 그럼 뭐 어떡해, 때려야지.

 

그렇게 갤럭시 버즈로 귀를 막고 (내 고막은 소중하니까) 컨트롤암이 찌그러질 정도로 망치질을 해댄 결과 다행히도 컨트롤암을 떼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컨트롤암의 상태는 말 그대로 처참했다. 프레임과 연결되는 쪽에는 고무 부싱이 2개가 있는데, 하나가 완전히 찢어져서 스윽 빠져나오는 수준이었다. 이러니까 핸들 돌릴 때 깡깡거리는 소리가 나지...

 

조립은 의외로 간단했다. 아 물론 휠베어링과 브레이크 및 브레이크 로터를 한번에 들어올리면서 동시에 컨트롤암을 아래로 억지로 밀어내려 볼조인트와 결합시켜야 하기 때문에 팔이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그리고 볼트들이 모두 녹이 슬어 WD-40로 떡칠을 해가면서 작업을 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되기야 했다.

 

그리고 항상 첫 한 번이 어렵다고, 오른쪽을 작업하고 나니 왼쪽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오른쪽이 약 3시간 정도 걸렸다면 왼쪽은 약 1시간 반 남짓? 그 중에서 30분 정도는 컨트롤암과 볼조인트를 재결합하는데 썼지 싶다. 아무리 쇳덩어리라지만 정말 미치도록 무겁다. 모양도 둥글어서 한 손으로 들기 거의 불가능할 정도. 몸을 써서 끌어안은 채로 어린아이 내려놓듯 결합해야 그나마 가능해진다.

 

작업을 완료하고 사장님과 짤막하게 수다를 떨었는데, 그분 입장에서는 되게 재밌었겠지 싶다. 젊은 놈이 부품 한 상자 갖고 와서는 패기롭게 교체하겠다고 하더니 땀 뻘뻘 흘리고 기름때에 떡칠되어 가면서 작업을 하고 있고, 그런데 심지어 정비 많이 안 해본 사람인데 정비 중에서도 고난도 정비에 속한다는 컨트롤암 교체를 어쨌든 성공은 했고. 나중에 또 용기 생기면 엔진마운트 교체하러 놀러 오라셨다. 그게 언제가 될지는 나도 모르지만.

 

이렇게 또 최소 5-60만원을 아꼈고, 결정적으로 그 동안 자동차를 몰면서 느꼈던 다양한 증상들이 한 방에 해결되었다. 그 증상인즉슨 아래와 같다.

 

1. 핸들을 좌우로 돌릴 때 가끔씩 둔탁한 충격음이 들림. (고무 망치로 금속을 때리는 듯한 소리)

2. 좌로 유턴 시 앞축에서 느껴지는 미끄러짐.

3. 중-고속 (50km/h 이상) 주행 중 제동 시 왼쪽으로 살짝 쏠림.

4. 액셀/브레이크를 밟을 때 가끔씩 위와 같은 둔탁한 충격음이 들림.

 

그리고 현재는 운전이 즐거워질 만큼 상기한 1-4번의 증상이 모두 해결되었다. 내가 진짜 이걸 고친 거야? 싶을 정도로 신기하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자랑스럽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걱정되기도 한다. 다음에는 또 어떤 고생을 하게 될까, 싶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차 고친 썰을 풀었더니 대체로 공감은 안 되는 모양이었다. 왜 그렇게 힘들게 고쳐... 하는 느낌. 근데 어떡하겠나, 난 이게 좋은걸. 돈도 아껴 가면서 내가 아끼는 기계를 내가 직접 고치는 건데 힘은 들지언정 고통스럽지는 않다.

 

다음 번에는 앞좌석의 12V 소켓을 교체할 예정이다. 물론, 귀차니즘을 극복한 후에.

 

오늘의 추천곡은 Conan Gray의 'Lookali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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