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랜만에 블로그에 글을 쓴다. 마지막으로 글을 쓴 게 거의 3달 전이었던데... 그 동안은 굳이 글로 담아 둘 만한 것도 없었고 결정적으로 귀찮았다(!).
지난 3달 동안 무슨 일이 있었지?
일에 관련된 건 딱히 특별한 게 없다. 계속 전북대로 출근하며 연구를 했고, 그 연구 중에서 엄청나게 멋진 성과가 나온 것도 아니었다. 애초에 엄청나게 멋진 연구를 하는 게 아니기도 했고. 종종 학회나 심포지움에 참석하기는 했는데, 딱히 얻는 게 많다고 느낄 정도는 아니었다. 말 그대로 '소소한 일상' 뿐이었다.
아, 근데 전문연구요원 자리는 결국 최종합격했다. 떨어졌으면 그것대로 의아했을 상황이지만 그래도 뭔가 내가 예상한 만큼의 감동이 있지는 않았다. 지원자가 나 하나뿐이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내 자신도 속으로는 당연히 붙겠지 하는 생각이 있어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결론적으로는 앞으로 3년간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전북분원에서 근무하며 연구 스펙을 쌓아 나갈 예정이다. 오늘이 사실 출근 첫날인데 연말이랍시고 나 빼고는 아무도 출근하지를 않아서 지금도 연구실에서 혼자 죽치고 앉아 있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마냥. 느낌상 이번 주 내내 그럴 것 같다. 학생 신분이 아니라 전문연 신분이라서 다인실 오피스가 아닌 2인 1실 오피스를 따로 준다던데, 그 오피스를 배정받고 나서는 그곳을 어떻게 꾸밀지(?) 같은 생각이나 하면서 이번 주를 보내게 될 듯하다.
어떻게 보면 전문연 최종합격이 실감이 안 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연말 분위기에 묻혀 버려서 그런 건가. 출근을 해도 사람이 없으니 이거 뭐... 그것도 그렇고, 소위 'hit the ground running'이라는 표현처럼 시작부터 달리는 것도 아니고, 월급(!!!)도 아직 얼마인지 모르고 (대략 3-4백 정도 된다는데 그건 너무 애매하잖아...), 사원증도 아직 발급이 안 됐고, 심지어 사무실도 배정받을 예정인데 아직은 어디인지 얘기가 없어 원래 KIST에 방문할 때마다 사용하던 떨이 자리를 사용하는 중이다.
예전에 전문연에 대해서 처음 알아볼 때 그런 얘기를 들었다. KIST는 정출연 중에서는 국내 원탑 같은 느낌이라 경쟁이 엄청날 거라고. 심지어 작년부터 본원/전북분원/강릉분원 각각 TO가 1명씩만 배정이 되어서 더더욱. 근데 뭐 저번에 실수(...)해서 떨어졌을 때에도 비록 전북분원에 지원자 수가 많았다고는 하나 1차를 통과한 건 나뿐이었고, 이번에는 심지어 지원자 자체가 나밖에 없었다. 생각보다 경쟁률이 낮은 거야, 아니면 내가 운이 좋았던 거야?
아, 그리고 사실 감사한 부분이 많다. 면접 잘 보라고 이런저런 피드백도 주시고 해서 이미 합격한 분위기였던 분원면접 (소위 '전공면접') 때뿐만 아니라 사실상 본 면접이라 할 수 있는 본원면접 (소위 '종합면접') 때도 내 스스로가 놀라울 만큼 말이 잘 나왔다. 면접 들어가기 직전에 전북분원 분원장님과 인사를 해서 그런가... 원래 한국어로 발표할 때는 말이 잘 안 나오다 보니 내심 당황해서(...) 목소리가 약간 상기되는데 그런 것도 없이 세상 차분한 분위기로 발표를 5분 제한 시간에 거의 딱 맞춰 마무리했고, 심지어 '이런 걸 물어보지 않을까' 했던 질문도 그대로 하셔서 (약간 당황은 했으나) 잘 대답했다. 질문은 전체적으로 내가 왜 KIST 전북분원과 맞는가, 그리고 왜 KIST 전북분원이 날 뽑아야 하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기억에 남는 첫 질문은 이거였다. '석사를 하고 왔으면 경험이 많다고 할 수가 없는데, 지원자님이 가진 강점이 무엇인가요?'
약간 당황했다. 석사를 하고 왔지만 박사처럼 훈련을 받아서 보통 석사랑은 다를 거라는 뉘앙스의 대답을 생각하긴 했는데 진짜로 그렇게 대답하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서. 결국 내가 석사를 진행하면서 겪었던 일들과 그를 내가 어떻게 극복했는지에 대해 설명하는 식으로 대답을 했다. 가령 그래핀은 스카치 테이프로 박리가 가능한데 hBN이나 MoS2는 그게 잘 안 되기 때문에 내가 직접 논문 뒤적이면서 PVA 기반 박리법이나 금 기반 박리법 등을 찾아낸 후에 그걸 연구실 실정에 맞게 수정해서 레시피를 정립했다던지, 아니면 내가 사용하던 장비로 금 박막을 증착한 적이 없어 내가 직접 레시피를 개발했다던지 등등.
두 번째 질문은 '전북대에서 인턴을 하면서 전문연을 생각하고 있을 정도면 대학교에서도 전문연을 할 수 있다는 걸 알 텐데, 왜 KIST에 지원했나요?'였다.
이 질문은 면접 준비하면서 예상했던 질문이라 안도했다. 다행히 난 정출연 전문연을 알아보기 전에 대학교 전문연을 먼저 알아봤고, 그와 함께 왜 KIST에 지원해서 굳이 3년이란 시간을 까먹는지에 대해서도 대답할 수 있었다. 내 대답은 대략 이렇다. '사실 KIST에 지원하기 전에 대학교 전문연에 대해서 먼저 검색해 보았는데, 제가 알기로는 대학교에서 전문연을 하려면 해당 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진행 중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제가 발표하며 언급했던 것처럼 2차원 물질만으로는 연구의 한계가 존재하는데, 지금 박사 학위를 바로 진행하게 되면 아무래도 제가 지금까지 다뤄 온 2차원 물질로 박사 학위를 진행하게 될 것이고 그것은 결국 제 연구 스펙트럼을 스스로 제한하는 꼴이 될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3년이라는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KIST의 복합소재기술연구소에서 2차원 물질 외에도 다른 소재를 접하면서 제 연구 시야를 넓힌 후에 박사 학위를 진행하는 것이 저에게 더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해서 KIST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감사하게도 내가 내놓은 이런저런 대답에 면접관님들이 적어도 불만족하시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리고 이 면접 후 약 일주일이 지나 최종합격 연락이 왔고, 지난 주에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입원서류를 준비한 결과 이제 3년간의 군복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격려해준 모든 사람들,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줬던 모든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요새는 운동을 꽤 자주 나간다. 정확히 말하면 배드민턴을 자주 친다. 예전부터 운동해야지, 라는 생각은 갖고 있었는데 헬스장을 등록하기도 애매하고 유산소 운동은 딱히 좋아하지 않다 보니 미루고 미루던 걸 배드민턴을 통해서 이루게 되었다. 심지어 제대로 치겠답시고 장비 역시 쓸만한 수준으로 구비해 놓았다. 라켓 2개, 신발 한 켤레, 셔틀콕 한두 통, 그리고 그걸 모두 담고 다닐 가방 하나. 그걸로 일주일에 최소 두번, 각각 2-3시간씩 정도는 나가려 노력한다. 지금 대략 두 달 정도 쳤는데, 실력이 많이 늘었다는 게 느껴진다. 처음에는 친다고 하기 민망한 수준이었는데 이제는 그래도 공수가 나름 되는 편이다. 나름! 잘한다고는 못한다!
음... 그리고 자동차 히터코어를 교체했다. 차를 여름에 사서 잘 몰랐는데 9-10월쯤 날씨가 쌀쌀해지기 시작해서 히터를 켜 보았더니 따뜻한 바람이 1-2분 정도만 나오고 바로 식어 버리더란다. 비슷한 증상을 검색해 보았더니 자동차의 엔진 온도를 감지하는 써모스탯(thermostat)이 오작동하는 것이거나 엔진을 식히고선 뜨거워진 냉각수의 열을 빼앗아 실내에 전달해 주는 라디에이터 비슷한 물건인 히터코어 내부에 이물질이 쌓여 열이 효율적으로 전달되지 않는 것이 원인이었다. 그 다음 볼보 공식 정비소에 문의를 해 보았는데 두 가지가 마음에 안 들었다. 첫 번째는 문제에 대한 내 설명을 제대로 듣지 않고 앵무새마냥 같은 답변을 되풀이하는 느낌이 들었으며, 두 번째는 가격이 도저히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써모스탯 교체는 38만원, 히터코어 교체는 90만원을 불렀는데, 히터코어는 내가 직접 검색해 본 결과 비록 정품은 아닐지언정 부품 자체가 7만원, 그리고 이를 교체하기 위해 동시에 교체해야 하는 냉각수가 약 8만원 정도였다.
가격 문제를 배제하더라도 히터 코어의 작동 원리를 검색해 본 후에는 아무리 생각을 해 보아도 써모스탯보다는 히터 코어의 문제 같았다. 결국 며칠 더 고민한 끝에 직접 수리하기로 마음먹고, 셀프정비소에서 자리를 예약한 후 약 3시간 30분간 낑낑거린 결과 히터코어를 교체할 수 있었다. 정비하는 김에 냉각수도 교환했고. 그리고 부품들을 재조립한 후에 시동을 켜서 히터를 켜 보는데... 정말 따뜻했다. 수리 전에는 엔진이 정상 온도에 진입한 후에도 바람을 약하게 해야 따뜻한 바람이 나올까말까 했는데, 수리 후에는 엔진이 제대로 예열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따뜻한 바람이 나왔다. 다행히도 본격적으로 추워지기 전에 수리를 해서 겨울에 운전을 할 때도 전혀 춥지 않게 다닐 수 있게 되었다. 그것도 정비사 말 들었으면 130만원 가까이 깨졌을 작업에 고작 15만원 남짓 들여서. 역시 정비사 말은 적당히 걸러 들어야 해...
의식의 흐름을 따라 글을 쓰다 보니 주제가 뒤죽박죽인데, 이번에는 전역 후 계획에 대한 썰이다. 전문연 합격 후에 석사 시절 지도교수님께 연락을 드렸는데, 역시나 나에 대해 크나큰(...) 기대를 걸고 더욱 크나큰(...!) 계획을 제시하셨다. 난 속으로 뭐 KIST에서 전역한 후에는 UIUC나 코넬/컬럼비아 정도 가면 괜찮겠군 하고 있었는데 (딱히 그 학교들이 만만해서라기보다는 내가 나름 연줄이 있는 곳들이라 가능성이 꽤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도교수님은 UIUC는 무슨 얼어죽을 UIUC냐고, 스탠포드나 MIT를 바라보라고 하셨다. KIST에서 연구 실적만 빡세게 쌓아 놓으면 못할 것도 없다고.
켁.
뭐 스탠포드나 MIT를 가면 좋기야 좋다. 당연히 칼텍도. 그런 학교를 가면 연구하느라 영혼이 갈려나가겠지만 뭐 그건 차치하고서 일단 좋은 학교는 맞다. 근데 뭐랄까, 내가 거길 간다고? 하면 실감이 안 날 것 같다. 실감이 안 나는 것도 그렇고 사실 그런 학교들이 위치한 캘리포니아나 뉴욕 주는 생활비가 더럽게 비싸다. 사실 그래서 안 가는 거야! 내가 못 가는 게 아니라고!!!
오랜만에 글을 쓰니 별의별 똥글을 다 썼다. 일단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여기까지.
오늘의 추천곡은 예전에 이미 추천했던 것 같기도 한 넬의 '치유'. 원곡 말고, 2018년 앨범 '행복했으면 좋겠어'에 수록된 어쿠스틱 편곡버전이 난 더 마음에 든다. 특히 곡의 1절?이 끝난 후 중간부에 나오는 2절의 인트로 부분은 정말... 듣고 들어도 소름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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