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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노버 씽크패드 Z16 간단 사용기, 장단점

abcdman95 2023. 9. 5. 21:44

갑자기, 뜬금없이, 노트북을 샀다. 기존에 사용하던 HP 엔비 13 x360은 가벼운 용도로는 전혀 부족함이 없었지만, 종종 이런저런 작업을 하거나 3D 렌더링을 할 때 8GB의 메모리는 아쉬움이 느껴졌다. 또한 배터리 성능이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닌지라 충전기는 어딜 가든 필참이었다.

 

그리고 며칠 전에 아버지가 사용하던 완전 구형 (무려 2012년식) HP 파빌리온 15를 잠시 작동시킬 일이 있었는데 역시 i5-2410m은 SSD를 달든 말든 사용할 만한 물건이 아니었다.

 

그래서 뭐... 겸사겸사 내 노트북도 업그레이드할 겸 아버지 노트북도 업그레이드(?)할 겸 해서 노트북을 샀다. 이제 내 HP 엔비 13 x360은 포맷해서 아버지께 드릴 예정이다. 내게는 약간 부족한 성능이지만, 라이젠 7 4700U와 8GB 메모리에 무려 1TB의 SSD는 현역으로 뛰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성능이기 때문이다.

 

서론이 길었다. 도대체 뭘 샀냐고?

 

바로 레노버 씽크패드 Z16! 보통 레노버의 기함급 노트북 하면 씽크패드 X1 카본을 떠올리지만, 개인적으로 인텔 CPU를 싫어하는 편이라 약간 '이단' 느낌인 Z16을 선택했다.

 

사양은 아래와 같다.

 

CPU: 라이젠 7 PRO 6850H

GPU: AMD Radeon RX 6500M

메모리: LPDDR5 16GB

저장장치: NVMe 512GB

디스플레이: 1920*1200, 400nit, IPS, 안티글래어

입출력: PD 지원 USB-C 3개, SD카드 슬롯 1개, 3.5mm 1개

 

노트북을 신품으로 구매한 게 약 5년만인 것 같은데, 확실히 기함급 AMD 제품이라고 신경써서 만든 티가 난다. 만듦새도 좋고, HP 스펙터 아래의 프리미엄 라인업 모델인 HP 엔비와는 다르게 묘하게 어색한 단차도 존재하지 않는다. 디자인이 밋밋한 감이 없잖아 있으나, 이는 아래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고화질 웹캠을 위해 역노치 디자인을 적용함으로써 포인트가 살아난 편이다.

 

 

상판에는 레노버 특유의 측면 하단 로고와 전통의 씽크패드 로고가 자리잡고 있다. 또한 역시 전통을 따라 씽크패드 로고의 빨간 점은 상태 표시등의 역할도 겸한다. 그리고 대망의 (+ 논란의...?) 역노치와 디자인 포인트가 있다.

 

 

개인적으로 꽤 마음에 든다. 과하지 않고, 동시에 적절히 단순한 디자인이다. 다만, 굳이 FHD f/2.0 Digital Mic Array라는 문구를 적어 놓았어야 했나 싶다. 어차피 이 노트북을 사는 사람들은 이미 이 노트북에 FHD급 웹캠이 달린다는 것쯤은 알고 있을 텐데 말이다. 외판 디자인 중 유일하게 단점으로 꼽을 만한 부분이다.

 

 

처음 노트북을 직접 만져 보았을 때 생각했던 건, 다른 색상이 있었어도 좋았겠다, 였다. 그런데 또 생각해 보면 이미 역노치의 디자인 포인트가 꽤 강렬한 이미지를 선사하기 때문에 굳이 디자인적으로 다른 요소를 추가할 이유는 없었을 것 같기도 하고?

 

 

측면 포트는 상기한 바와 같이 USB-C 포트 3개와 SD카드 슬롯 1개, 그리고 3.5mm 단자 1개가 존재한다. 충전 포트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알 수 있다시피 충전은 PD를 지원하는 USB-C로 가능하며, 재미있게도 양측의 3개 포트 모두 충전에 사용될 수 있다. 또한 SD카드는 사용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냐마는, 난 개인적으로 사진을 자주 찍는 편이기 때문에 별도의 어댑터나 리더기 없이 SD카드를 직접적으로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꽤 유용하다고 본다.

 

Z16의 리뷰를 보면 USB-A나 HDMI 등 레거시 포트가 없이 USB-C 3개만 달려 있는 것을 단점으로 꼽는 경우가 많다. 나도 어느 정도 공감하는 편인데, 어차피 노트북의 덩치가 꽤 있는 편이라 가방에 넣고 다니기 때문에 그냥 USB 허브를 들고 다니면 해결되는 문제이기도 해서 딱히 불편을 느끼지는 않는다.

 

왜 USB-C 3개만 달아 놨냐고? 추측하자면 뭐 최신형 포트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 따위의 이유가 아니라 측면에서 보았을 때 노트북이 얇아 보이도록 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실제로도 그렇기도 하고. 디자인적인 면에서는 진짜 예쁘긴 한데... HP처럼 접이식 USB-A 포트가 있었어도 괜찮았을 것 같다.

 

 

측면에서 보면 약간 맥북프로나 XPS 느낌이 난다. 직선적이고, 얇고, 금속 재질을 여과없이 드러내는 디자인이다. 아, 물론 저 역노치의 존재감 덕분에(?), 그리고 은색의 외관과는 달리 검은색으로 처리된 내부 덕분에 저거 맥북이야? 우웩(?) 하며 헷갈릴 일은 없다.

 

 

논란의 역노치에는 웹캠과 적외선 카메라가 달려 있다. 웹캠은 주로 노트북에 달리는 720p 해상도가 아닌 FHD 해상도라고 한다. 뭐, 줌미팅 할 때는 꽤 유용하겠지? 그리고 적외선 카메라는 Windows Hello의 안면인식 기능에 사용된다. 난 개인적으로 지문인식을 선호해서 얼굴은 등록만 해 두고 지문인식으로 잠금해제를 하는 편인데, 그래도 안면인식과 지문인식의 선택지를 주는 점은 칭찬할 만하다고 본다.

 

 

노트북을 열고 전면을 바라보면 광활한 디스플레이가 먼저 눈에 띈다. 과거 노트북 화면비의 대세였던 16:9를 버리고 조금 더 범용성이 좋은 16:10의 화면비를 가지고 있다. 내가 구매한 모델에는 1920x1200 해상도의 안티글래어 IPS 패널이 탑재되어 있는데, 원한다면 3840x2400 해상도의 OLED 터치패널을 선택할 수도 있다. 나는 굳이 4K가 필요하지도 않고 터치패널을 쓸 일도 많지 않으며 추가적인 배터리 소모를 감수할 만큼 OLED를 좋아하지도 않기 때문에 (그리고 가격차이가 너무 많이 나서ㅠㅠ) 기본 패널을 선택했는데, 아주 만족하고 있다. 안티글래어 패널이라 쨍한 느낌은 약간 덜하지만, 동시에 화면에 무언가가 비치는 일이 없어 작업을 할 때 사소한 방해를 덜 받는 편이다.

 

이외에도 눈에 띄는 건 좌우의 스피커와 터치패드 디자인이다. 스피커는 굳이 이어폰을 꼽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음질과 음량 모두 만족스러우며, 터치패드로는 기존의 빨콩(!)용 버튼을 삭제하고 햅틱 터치패드가 탑재되어 있다. 전통을 깼다며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는데, 난 어차피 씽크패드를 처음 써 보는 입장이라 그런지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익숙해지면 빨콩이 엄청 편하다고 하던데, 이미 터치패드에 너무 익숙해져 있어서 빨콩은 굳이 안 쓰겠지 싶다.

 

 

아, 그리고 한 가지 첨언하자면 이 햅틱 터치패드는 진동 세기나 반응 압력을 조절할 수 있다. 난 진동 세기를 최대로 설정해 두었는데, 꽤 사실적인(?) 반응이 느껴진다. 국내 리뷰어들 중에 터치패드 햅틱반응이 너무 약하고 어색하다고 불평하는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있던데, 약한 게 아니라 설정에서 바꿀 수 있다구요 이 사람들아...

 

 

개인적으로 노트북에 잡다한 스티커가 붙어 있는 게 싫어서 라이젠 스티커와 EyeSafe 스티커는 노트북을 개봉하자마자 뜯어서 버렸고, 대신 HP 엔비 13 x360에 붙어 있던 UIUC 공대 스티커를 옮겨 붙여 주었다. 약간 깔끔함이 덜해진 느낌이 없잖아 있지만, 그래도 일리노이 부심은 버릴 수 없으니까!

 

 

아직 사용한지 며칠 되지도 않았지만, 전반적으로 대만족이다. 무거운 작업을 돌릴 게 아니라면 하루 종일 충전기가 필요없을 정도로 배터리가 오래 가는 점도 그렇고, 쓰로틀링을 감안하더라도 웬만한 데스크탑 CPU 정도와 맞먹는 성능도 그렇고, 광활한 디스플레이도 그렇고, 깔끔하고 시크하면서 자신만의 캐릭터가 확실한 디자인도 그렇다.

 

 

단, 저전력 CPU에서 고성능 CPU로 넘어오면서 발열에는 어느 정도 적응해야겠지 싶다. 라이젠 7 6850H는 내 현역 데스크탑에 달려 있는 라이젠 7 3700X와 엇비슷한 최고 성능을 보여주는데 (물론 냉각의 한계로 인해 지속 성능은 떨어진다), 그런 CPU를 이렇게 얇은 폼팩터에 집어넣기 위해 발열을 어느 정도 희생한 느낌이 든다. 나야 하루종일 노트북을 쓰지는 않기 때문에 발열이 약간 있는 편이어도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는 않겠으나, 노트북을 주로 거치형으로 사용할 예정이라면 쿨링패드는 사실상 필수이다.

 

아, 그리고 무게에 대한 부담이 많지 않다면 16인치는 신세계이다. 난 어딜 간다 하면 차를 가져가기 때문에 가벼운 무게에 집착할 필요가 없었고, 그렇기 때문에 1.81kg의 무게 정도는 충분히 감수할 만한 수준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무게를 약간 희생하고 13인치에서 16인치로 넘어오자 당황스러울 정도로 화면이 광활해졌다. 태블릿 쓰다가 컴퓨터 쓰는 기분이다.

 

오늘의 추천곡은 허회경의 '김철수 씨 이야기.' 인디곡은 언제 들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