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hilosopher's Ha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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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기록

필름사진 번외편2 - 소련제 카메라 테스트롤

abcdman95 2021. 5. 30. 23:53

오늘은 인왕산에 잠시 다녀왔다. 딱히 어떤 이유가 있었다기보다는 간만에 일요일 과외가 취소돼서, 그리고 집에 하루종일 틀어박혀 있기는 싫어서. 아, 그리고 새로 구매한 후 문제가 생겨 수리하느라 아직도 테스트롤을 구워 보지 못한 나의 1971년식 소련제 카메라 조르키 4로 시험촬영을 해 보고 싶기도 했고.

 

카메라를 3대나 챙기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그 중 1대에 사용할 망원렌즈와 줌렌즈까지 챙겨야 할 경우에는 더더욱. 기존에 사용하던 EOS 550D와 FM2만 챙겨도 꽤 묵직했는데, 조르키 4도 덩치만 작지 FM2 못지않은 쇳덩어리인지라 꽤나 무겁다. 디카인 550D가 제일 가벼울 정도. 나중에 550D에 쓸 망원렌즈도 구입할까 생각 중인데 그 때는 어떻게 하지?

 

이 카메라의 특이사항이라면 내장 노출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FM2는 비록 단순하지만 노출계가 있어 조리개값과 셔터속도를 대략 맞출 수 있는데 조르키 4는 배터리가 필요없는 셀레늄 노출계조차 달려 있지 않아 정노출을 직접 계산/예상하는 소위 '뇌출계'를 사용하던지 휴대폰의 노출계 앱이나 외장형 노출계를 사용해야 한다. 난 값비싼 외장형 노출계를 구매하고 싶지는 않으므로 휴대폰 앱을 사용했는데, 과노출된 것이 좀 있어 바라는 만큼 사진을 많이 건지지는 못했다.

 

전체적으로 느낀 건 RF카메라는 셔터 소리가 SLR에 비해 셔터음이 조용하다는 것, RF식 초점방식은 SLR식 초점방식에 비해 약간 적응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RF는 저속셔터를 어느 정도 사용할 수 있다는 것. 아, 물론 내 손은 그닥 안정적인 편이 아니므로 (이것 때문에 대학원 때 얼마나 많은 실험을 망쳤던가...) 저속셔터 역시 그닥 효과를 보지는 못했지만 아무튼.

 

사진, 사진을 보자! (?)

 

Zorki 4, Kodak Gold 200

 

Zorki 4, Kodak Gold 200

 

Zorki 4, Kodak Gold 200

 

Zorki 4, Kodak Gold 200

 

Zorki 4, Kodak Gold 200

 

Zorki 4, Kodak Gold 200

 

지난 화요일 면접을 보고 멘탈이 망가져 돌아온 후 보낸 번개 요청에 쿨하게 응해주신 고등학교 선배와 함께. 원래는 선배의 얼굴도 나오게 찍고 싶었는데 결과물을 보니 뭔가 얼굴이 반쯤 가려지게 나온 게 또 은근 감성 있는 것 같다. 아직 RF초보라 초점이 완벽하게 맞진 않았지만 이번 테스트롤 중 두 번째로 마음에 드는 사진 중 하나이다.

 

Zorki 4, Kodak Gold 200

 

Zorki 4, Kodak Gold 200

 

그리고 조르키로 찍은 첫 롤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 정확히 맞춘 노출, 정확히 맞춘 초점, 피사체와 배경이 적절히 보이는 구도. 예전에는 나름 자주 보였지만 이제는 튜닝카 정도로 쓰이는 것 외에는 보기 힘든 티코가, 그것도 관리가 잘 된 상태로 주차되어 있길래 셔터를 눌러 보았다. 충무로에서 갓 수리받은 후 노출도 폰출계와 뇌출계를 대충 조합한 상태로 처음 찍은 사진인데 잘 나와서 정말 만족스럽다.

 

흔히들 사진에 입문하려면 자동카메라를, 그 다음에 수동카메라를 사용하라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FM2는 필름 카메라를 한 번도 사용해 본 적이 없는데다 조리개값과 ISO의 의미를 몰랐던 나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카메라였겠지만, 조르키를 다루다 보면 FM2는 정말 다루기 쉬운 카메라라는 걸 느끼게 된다. 노출계가 있는 것도 그렇고, 초점 맞추는 것도 그렇고, 하다못해 필름을 넣고 빼는 과정도 비슷하지만 다르다. 벌써 조르키는 두 번째 롤을 장전하면서 실수를 하는 바람에 필름 스풀에서 필름이 빠져 버려 첫 5장 정도를 날려 버렸다.

 

이 카메라로는 또 몇 롤을 연습삼아 RF로 초점을 맞추는 법, 저속셔터를 안정적으로 사용하는 법, 그리고 필름을 정확히 장전하는 법 등을 익힐 생각이다. 어떻게 보면 사서 고생이지만, 어떻게 보면 나에게는 힐링하는 방법이니까.

 

오늘의 추천곡은 오랜만에 가사가 없는 연주곡. 드라마 '추노'에 삽입된 OST '비익련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