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인왕산에 잠시 다녀왔다. 딱히 어떤 이유가 있었다기보다는 간만에 일요일 과외가 취소돼서, 그리고 집에 하루종일 틀어박혀 있기는 싫어서. 아, 그리고 새로 구매한 후 문제가 생겨 수리하느라 아직도 테스트롤을 구워 보지 못한 나의 1971년식 소련제 카메라 조르키 4로 시험촬영을 해 보고 싶기도 했고.
카메라를 3대나 챙기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그 중 1대에 사용할 망원렌즈와 줌렌즈까지 챙겨야 할 경우에는 더더욱. 기존에 사용하던 EOS 550D와 FM2만 챙겨도 꽤 묵직했는데, 조르키 4도 덩치만 작지 FM2 못지않은 쇳덩어리인지라 꽤나 무겁다. 디카인 550D가 제일 가벼울 정도. 나중에 550D에 쓸 망원렌즈도 구입할까 생각 중인데 그 때는 어떻게 하지?
이 카메라의 특이사항이라면 내장 노출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FM2는 비록 단순하지만 노출계가 있어 조리개값과 셔터속도를 대략 맞출 수 있는데 조르키 4는 배터리가 필요없는 셀레늄 노출계조차 달려 있지 않아 정노출을 직접 계산/예상하는 소위 '뇌출계'를 사용하던지 휴대폰의 노출계 앱이나 외장형 노출계를 사용해야 한다. 난 값비싼 외장형 노출계를 구매하고 싶지는 않으므로 휴대폰 앱을 사용했는데, 과노출된 것이 좀 있어 바라는 만큼 사진을 많이 건지지는 못했다.
전체적으로 느낀 건 RF카메라는 셔터 소리가 SLR에 비해 셔터음이 조용하다는 것, RF식 초점방식은 SLR식 초점방식에 비해 약간 적응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RF는 저속셔터를 어느 정도 사용할 수 있다는 것. 아, 물론 내 손은 그닥 안정적인 편이 아니므로 (이것 때문에 대학원 때 얼마나 많은 실험을 망쳤던가...) 저속셔터 역시 그닥 효과를 보지는 못했지만 아무튼.
사진, 사진을 보자! (?)
지난 화요일 면접을 보고 멘탈이 망가져 돌아온 후 보낸 번개 요청에 쿨하게 응해주신 고등학교 선배와 함께. 원래는 선배의 얼굴도 나오게 찍고 싶었는데 결과물을 보니 뭔가 얼굴이 반쯤 가려지게 나온 게 또 은근 감성 있는 것 같다. 아직 RF초보라 초점이 완벽하게 맞진 않았지만 이번 테스트롤 중 두 번째로 마음에 드는 사진 중 하나이다.
그리고 조르키로 찍은 첫 롤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 정확히 맞춘 노출, 정확히 맞춘 초점, 피사체와 배경이 적절히 보이는 구도. 예전에는 나름 자주 보였지만 이제는 튜닝카 정도로 쓰이는 것 외에는 보기 힘든 티코가, 그것도 관리가 잘 된 상태로 주차되어 있길래 셔터를 눌러 보았다. 충무로에서 갓 수리받은 후 노출도 폰출계와 뇌출계를 대충 조합한 상태로 처음 찍은 사진인데 잘 나와서 정말 만족스럽다.
흔히들 사진에 입문하려면 자동카메라를, 그 다음에 수동카메라를 사용하라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FM2는 필름 카메라를 한 번도 사용해 본 적이 없는데다 조리개값과 ISO의 의미를 몰랐던 나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카메라였겠지만, 조르키를 다루다 보면 FM2는 정말 다루기 쉬운 카메라라는 걸 느끼게 된다. 노출계가 있는 것도 그렇고, 초점 맞추는 것도 그렇고, 하다못해 필름을 넣고 빼는 과정도 비슷하지만 다르다. 벌써 조르키는 두 번째 롤을 장전하면서 실수를 하는 바람에 필름 스풀에서 필름이 빠져 버려 첫 5장 정도를 날려 버렸다.
이 카메라로는 또 몇 롤을 연습삼아 RF로 초점을 맞추는 법, 저속셔터를 안정적으로 사용하는 법, 그리고 필름을 정확히 장전하는 법 등을 익힐 생각이다. 어떻게 보면 사서 고생이지만, 어떻게 보면 나에게는 힐링하는 방법이니까.
오늘의 추천곡은 오랜만에 가사가 없는 연주곡. 드라마 '추노'에 삽입된 OST '비익련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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